경덕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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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왕(景德王, 719 ~ 765년, 재위: 742년 ~ 765년)은 신라의 제35대 왕이다. 성은 김씨(金氏). 휘는 헌영(憲英). 효성왕의 동복 동생이며, 아버지는 제 33대 왕 성덕왕. 어머니는 이찬 순원(順元)의 딸 소덕왕후(炤德王后).왕비는 서불감 김의충(金義忠)의 딸 만월부인(満月夫人, 경수왕후(景垂王后)). 효성왕에게 아들 없었기 때문에 742년 5월에 효성왕의 사망하여 왕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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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생애
효성왕(孝成王)의 친동생으로 효성왕이 죽자 왕위를 계승하였다. 경덕왕 때는 신라가 극성기에 달한 때로 제반 제도·관직을 당 제도로 개편하는 한편, 전국의 행정체제및 행정단위의 명칭을 개혁하며 행정구역을 9주 5소경으로 나누었다.[1]
경덕왕은 불교 중흥에도 노력하여 황룡사(皇龍寺)의 종을 주조하였으며, 굴불사(堀佛寺)를 비롯하여 영흥(永興)·원연(元延)·불국(佛國) 등의 절을 세웠다. 그는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봉덕사 종을 만들게 했는데,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었으며 아들인 혜공왕이 완성하였다. 이 종의 소리는 맑고, 멀리까지 들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원래 이름은 '성덕대왕 신종'으로 한국에서 가장 큰 종인 동시에 국보(99호)이며, 후에는 봉덕사 종으로 불렀다. 경덕왕은 당과도 활발히 교역하는 등 산업 발전에 힘써 신라의 전성 시대를 이루었다.
경덕왕 10년(751년)에는 불국사가 완공되었으며, 757년 3월에는 녹읍이 다시 지급되었다.
[편집] 가계
[편집] 참고
[편집] 주석
- ↑ 일반적으로 이를 고유의 지명을 모두 중국식으로 고친 것으로 여겨지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가령 웅천주의 한산군(韓山郡)은 백제시대의 대산군(大山郡)인데 이는 한자어인 대(大)를 오히려 고유어인 한(韓)으로 바꾼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때의 행정명의 개혁은 대개 단순히 표기법만 한문으로 고치거나 간소화한 것으로 한자명이라도 당시에는 고유명으로 그대로 읽혔다. 이는 현재의 일본에서 지명을 읽는 것과 어느정도 비슷하다.[출처 필요]
| 전 대 효성왕 |
제35대 신라 국왕 742년 - 765년 |
후 대 혜공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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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역대 국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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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라 상대 (B.C. 57 - A.D. 6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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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중대 (654 - 7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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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하대 (780 - 9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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