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덕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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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보덕왕
고구려의 29대 태왕
재위 668년 ~ 683년
왕후 경주 김씨
부왕 보장왕
모후 왕후 연씨
이전 왕 보장왕
다음 왕 보원왕

보덕왕(報德王) 고안승(高安勝, ? ~ 683년), 재위: 668년 ~ 683년) 또는 안순(安舜)은 고구려 부흥운동 지도자이다. 670년 고구려의 장군 검모잠당나라에 항거하여 고구려 부흥운동을 시작했을 때, 고구려 왕으로 추대받았다.

생애[편집]

출신[편집]

안승의 출신에 대해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보장왕의 아들이라 하고, 신라본기연정토의 아들이라 하였다.

고구려 부흥운동[편집]

668년, 고구려신라당나라 연합군에게 멸망당한 뒤, 안승은 사야도(史冶島)에 머무르고 있었다. 670년검모잠이 사야도에 있던 안승을 한성으로 맞아들여 왕으로 추대하고 고구려 부흥군을 일으켰다. 그 후 고구려 부흥군은 소형 다식(多式)을 보내 신라에 대해 복속할 것을 약속하고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군량문제를 놓고 부흥군에서 내분이 일어나 안승검모잠을 죽이고 신라에 투항하고 말았다.

신라 귀족으로의 편입[편집]

신라로 투항한 안승신라 문무왕으로부터 고구려 왕에 봉해졌다가, 674년(문무왕 14년)부흥운동이 일어나자 금마저(지금의 익산) 일대에서 보덕국의 왕에 봉해졌다.

679년 신라와 연합하여 백제지역을 평정한 후 나당전쟁에 참전, 당나라 군을 격퇴하였다.

683년(신문왕 3년) 서라벌에서 문무왕의 조카딸과 혼인하여 소판(蘇判)의 관위을 받고 김씨의 성을 사성받은 뒤 집, 토지를 하사받아 진골 귀족이 되었다.

683년 안승신라 귀족으로 편입된 데에 불만을 품은 부하 대문(大文) 등의 무리가 금마저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신라 관군에 진압되었다. 대문의 반란을 진압한 신라는 금마저에 금마군(郡)을 설치했다.

이후의 안승의 자세한 삶은 전해지지 않는다.

평가[편집]

안승에 대한 후대 평가는 사료부족으로 정확하게 알수는 없지만, 그가 고구려유민들을 신라땅에 정착시켜 신라의 삼국통일을 도와 큰 공을 세움으로써 신라에 편입되었을 때 공신급인 6두품의 지위로 확정하게하여 사실상 신라 진골. 6두품세력과 거의 대등한 입장에 서게한 인물로 평가된다. 이 부분은 몰락한 가야계 진골출신인 김무력김유신의 성장과정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5두품으로 격하된 백제계와는 상반된 것으로 이는 통일신라 200년간 한번도 신라 내에서 고구려계의 지위가 6두품아래로 격하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알 수있다. 이는 안승이 현실적인 외교감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수 있다. 이러한 배경으로 형성된 고구려계의 힘은 뒤에 왕건고려를 세우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가계[편집]

보장왕의 아들설[편집]

연정토의 아들 설[편집]

관련 작품[편집]

드라마[편집]

참고[편집]

함께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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