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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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민중왕
高句麗
고구려의 4대 국왕
본명 고해색주(高解色朱)
재위 44년 - 48년
부왕 유리명왕
이전 왕 대무신왕
다음 왕 모본왕

민중왕(閔中王, ?~48년, 재위: 44년 음력 10월~48년)은 고구려의 제4대 군주로, 유리명왕의 아들이다. 이름은 해색주(解色朱) 또는 해읍주(解邑朱)이나 해씨(解氏)일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생애[편집]

삼국사기》에는 제3대 대무신왕(大武神王)의 아우로 나와 있고, 〈삼국유사〉에는 대무신왕의 아들이라고 되어 있다. 대무신왕이 죽은 뒤 태자 해우(解憂)가 어리므로 대신 왕으로 추대되었다.

왕위에 오른 44년 음력 11월에 대사면령을 내렸으며, 45년 음력 3월에는 신하들에게 큰 연회를 베풀었다. 음력 5월에는 나라 동쪽에서 홍수가 나서 백성들이 굶주리자 창고를 열어 진휼했다. 47년에 사냥을 나간 민중왕은 민중원(閔中原)에 이르러 석굴을 발견하고 그곳에 자신을 장사지낼 것을 명하였다. 음력 10월에는 잠지락부(蠶支落部)의 대가(大家)인 대승(戴升) 등 1만여 가(家)가 (漢)의 낙랑으로 투항하였다. 48년에 왕이 죽자 유언에 따라 석굴에 장사지내고 지명을 따서 왕명을 민중왕(閔中王)이라 하였다.

민중왕의 가족에 대한 기록은 없다.

가계[편집]

  • 부왕 : 유리명왕(瑠璃明王)
    • 모후 :왕후 송씨(王后 松氏) - 다물후(多勿侯) 송양(松讓)의 딸이다.
    • 모후 : 왕후 송씨(王后 松氏) - 왕후 송씨가 기원전 17년에 사망하였으므로, 아래의 아들들은 또다른 송씨 부인으로부터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 형 : 해명(解明, 기원전 12년 ~ 서기 9년) - 두 번째 태자.
      • 형 : 무휼(無恤. 서기 4년 ~ 서기 44년) - 서기 18년 음력 10월, 대무신왕(大武神王)으로 즉위하였다.
      • 형 : 여진(如津, ? ~ 서기 18년) - 서기 18년 여름 음력 4월, 물에 빠져 죽었다. 여진의 죽음에 유리명왕은 크게 슬퍼하여 시체를 찾았으며, 시체를 찾은 사람에게 금 10근과 밭 10경을 상으로 내렸다.
      • 아우 :재사(再思, ? ~ ?[1]) - 제6대 태조왕의 아버지이다.

참고[편집]

주석[편집]

  1. 재사의 막내아들로 알려진 신대왕의 출생년도가 89년이다. 그러나 재사에 대해서는 주몽과 함께 온 개국공신 재사와 동일인이라는 설 혹은 후손이라는 설,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 의하면 대무신왕의 후손이라는 설이 존재한다.
전 대
대무신왕
제4대 고구려 국왕
44년 - 48년
후 대
모본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