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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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공주
平崗公主
아차산 입구의 온달과 평강공주 동상
아차산 입구의 온달과 평강공주 동상
고구려의 공주
이름
미상
신상정보
출생일 미상
사망일 미상
부친 평원왕
모친 미상
배우자 온달
자녀 미상

평강공주(平岡公主, 생몰년 미상)는 고구려 평원왕(平原王)의 딸이다. ‘평강’(平崗)은 평원왕(平原王)의 이칭인 평강상호왕(平崗上好王)에서 따온 것으로 원래 이름은 알 수 없다. 남편(男便) 온달(溫達)과의 설화(說話)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수록되어 있다.

전설[편집]

어려서 자주 울어 그때마다 평원왕이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고 놀렸다. 16세 때 평원왕이 상부(上部)의 고씨 가문에 출가시키려 하자 이를 거역하고 홀로 궁궐을 뛰쳐나와 온달을 찾아갔다. 장님이었던 온달의 노모는 평강공주의 향기를 맡고 부드러운 을 만져보고는 매우 귀하신 분 같다며 우리 모자는 찢어지게 가난하니 계실 곳이 아니라고 하였다. 마침 배고픔에 느릅나무 껍질을 지고 오던 온달 역시 어린 여자가 할 행동이 아니라며 강하게 거부하였다. 평강공주는 사립문 아래에서 을 보낸 후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모자를 다시 설득한 끝에 마침내 온달과 혼인하였다. 평강공주는 가져온 값비싼 팔찌를 팔아 살림을 장만하고 을 정성스레 길렀다. 온달은 그 말을 타고 북주와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워 이름이 높아졌다. 590년 온달이 아단성(阿旦城)에서 신라와 싸우다 전사하고 관에 들어갔는데 옮기려 해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평강공주가 관을 어루만지며 이미 생사가 정해졌으니 돌아가자고 해서야 옮길 수가 있었다.

가계[편집]

평강공주가 등장한 작품[편집]

같이 보기[편집]

참고 문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