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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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왕(新大王, 89년~179년, 재위 165년~179년)은 고구려의 제8대 군주이다. 태조대왕(太祖大王)과 차대왕(次大王)의 동생이지만 태조대왕과 터울이 43살까지 나므로 동생이 아니라 태조왕의 아들[1] 또는 차대왕의 아들[2]이라는 설도 있다.
신채호에 의하면 차대왕, 신대왕, 인고(仁固) 3형제는 태조대왕의 동생이 아니라 서자라고 한다.[3] 휘는 백고(伯固) 또는 백구(伯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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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편집]
차대왕 때에는 폭정을 피해 산골로 숨어 살았다. 165년에 명림답부(明臨荅夫)가 차대왕을 시해하자 좌보(左輔) 어지류(渪支留)가 사람을 보내 백고를 왕으로 추대하였다. 이에 77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신대왕은 166년, 좌·우보(左·右輔)를 폐지하고 국상제를 도입하여 명림답부를 임명하였으며 대사면령을 내리고 차대왕의 아들 추안(鄒安)을 양국군에 봉하는 등 정치적 안정을 꾀하였다. 168년에 후한(後漢)의 현도태수가 침공해 들어와 항복하였으며 169년에는 현도태수 공손도(公孫度)를 도와 부산적(富山賊)을 토벌하였다.[4] 172년에 한나라가 쳐들어오자 청야전술로 대응하였다. 한군이 굶주림에 지쳐 퇴각하자 신대왕은 명림답부를 보내 좌원(坐原)에서 한군을 크게 격파하였다.
176년에 왕자 남무(男武)를 왕태자로 삼았으며 179년 음력 12월에 91세로 사망하였다.
가족 관계 [편집]
주석 [편집]
- ↑ 진수, 《삼국지(三國志)》, 3세기 / 신채호는 차대왕, 신대왕, 인고가 태조대왕의 서자라고 주장했다.
- ↑ 범엽, 《후한서(後漢書)》, 5세기.
- ↑ 신채호, 《조선상고사》, 종로서원, 1948.
- ↑ 이 시기에는 실제 공손도가 요동에 세력을 잡기 이전으로, 이 기록은 오기로 보고 있다.
참고 [편집]
| 전 대 차대왕 |
제8대 고구려 국왕 165년 - 179년 |
후 대 고국천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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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역대 국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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