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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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동천왕
高句麗 東川王
고구려의 11대 국왕
본명 고우위거(高憂位居)
재위 227년 - 248년
부왕 산상왕
모후 관노부(灌奴部) 주통촌(酒桶村) 소비(小妃)
이전 왕 산상왕
다음 왕 중천왕

동천왕(東川王, 209년~248년, 재위: 227년~248년)은 고구려의 제11대 군주이다. 일명 동양왕(東襄王)이다. 산상왕(山上王)의 아들로 는 우위거(憂位居) 또는 위궁(位宮)이다. 아명은 교체(郊彘)이며 모후는 관노부(灌奴部) 주통촌(酒桶村) 출신의 소후(小后)이다.

생애[편집]

산상왕과 소후의 사이에서 태어나 아명은 ‘교체’라고 하였다. 교제(郊祭)에 쓸 돼지와 관련된 사건으로 태어났다는 의미이다. 위궁이라는 이름은 태어나면서부터 눈을 뜨고 사물을 본 것이 태조왕(太祖王) 궁(宮)과 닮았다고 하여 붙였다고 한다.[1]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어서 화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213년에 태자가 되었고, 227년에 왕위에 올랐다. 치세 초기에는 오나라와 우호관계를 유지하였는데, 234년(魏)와 화친한 이래 236년에는 오왕(吳王) 손권(孫權)의 사신 호위(胡衛)를 처형하고 목을 위나라에 보내기도 하였다. 또한 238년에는 위나라가 요동공손연(公孫淵)을 토벌하자 군사 1,000여 명을 보내 위나라를 도왔다.

그러나 공손연이 멸망하고 위나라와 직접 국경을 맞대게 되면서 고구려와 위나라의 관계는 험악하게 변하였다. 242년에 위나라 요동의 서안평(西安平)을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으며, 244년 유주자사 관구검(毌丘儉)이 고구려를 침공하였다. 동천왕은 관구검의 군대를 비류수(沸流水), 양구(梁口. 또는 梁貊)에서 격파하였고, 남옥저부근에서 현토태수 왕기를 사살시켜 관구검의 위군을 패퇴시켰다.

관구검은 현도태수 왕기(王頎)를 보내 왕을 추격하였는데 246년에 이르러 동천왕은 유유(紐由)의 계책으로 왕기를 죽이고 왕기의 군대를 물리치는 데 성공하였다. 수도로 귀환한 동천왕은 환도성이 전화를 입어 도읍으로 적당하지 않다고 여겨 247년 평양성(平壤城)을 쌓고 수도를 옮겼다.

한편, 245년에는 신라와의 전쟁 기록, 248년에는 신라와의 화친 기록이 있으나 사실 여부는 의심받고 있다. 248년에 왕이 죽었으니 나라 사람들이 슬퍼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가 많았다고 한다.

가족 관계[편집]

  • 부왕: 산상왕
  • 모후: 관노부(灌奴部) 주통촌(酒桶村) 출신의 산상왕 소비(小妃)
    • 아들: 고연불(高然弗) - 제12대 왕 중천왕이 된다.
    • 아들: 고예물(高預物) - 중천왕의 동생으로 248년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죽임을 당한다.
    • 아들: 고사구(高奢句) - 중천왕의 동생으로 248년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죽임을 당한다.
    • 후궁: 미상 - 《삼국사기》에 동천왕 19년 3월 동해(東海)사람이 미녀를 왕에게 바친다. 동천왕은 그녀를 후궁으로 받아 들었다.

동천왕을 섬긴 사람들[편집]

주석[편집]

  1. 진수, 《삼국지》, 〈동이전〉

참고[편집]

함께 보기[편집]

전 대
산상왕
제11대 고구려 국왕
227년 - 248년
후 대
중천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