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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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徐庶, ? ~ ? )는 중국 삼국시대 의 문신이다. 는 원직(元直).

[편집] 생애

영천의 서원직. 격검의 명수로, 친구의 원수를 대신 갚아주었기 때문에 "선복(單福)"이라는 가명으로 방랑 생활을 하였다. 청년 시절에 형주(荊州)에 머물며 제갈량(諸葛亮), 방통(龐統) 등과 교류하였다. 유비(劉備)의 밑으로 가 공을 세우나, 훗날 유비를 떠나 조조(曹操)에게 갔다. 이후 위나라에서 벼슬을 지내다가 234년 팽성에서 사망하였다. 정사에 의하면 서서가 유비의 곁을 떠난 것은 번성 전투에서 어머니가 조조군에 사로 잡혀있을 때라고 하며, 이미 그때 제갈량은 유비에게 임관해 있는 상태였다.

[편집] 《삼국지연의》에서의 서서

유비에게 임관할 당시 사용한 이름은 "선복"이었다. 서서는 유비에게 임관하여 여광(呂曠) · 여상(呂翔) 형제를 물리치도록 지략을 냈다. 이것은 유비가 군사를 얻어 최초로 거둔 승리라 할 수 있다. 또한, 여광 · 여상의 패배로 약이 오른 조인(曹仁)이 이전(李典)의 말을 듣지 않고 전군을 이끌고 신야를 공격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삼아 서서는 유비로 하여금 조인과 이전을 물리치고 번성을 취하도록 하였다. 서서가 유비에게 있을 때, 정욱(程昱)이 서서의 지략을 흠모하여 서서의 어머니를 볼모로 잡자, 서서는 조조에게 갔다. 유비와 헤어지면서 서서는 유비에게 복룡(제갈량)을 천거 한다 - 제갈량은 스스로를 와룡선생이라 칭했다.유비는 수경선생에게 들은 복룡과 봉추에 대해 질문을 하게 되고, 서서는 복룡은 융중의 제갈량, 봉추는 양양의 방통임을 밝히고 떠난다. 적벽대전에서 방통이 유비·손권(孫權) 연합군 측에 있을 때 유비에게 마음이 있었고 연합군 측이 대화계를 쓰리란 것을 알고 있던 서서가 어찌할 줄 모르던 중, 방통의 조언을 받아 서량의 마등(馬騰)이 공격해 온다고 조조에게 거짓 보고를 하여 전장에서 나와 결국 유비에게 창을 겨누지 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