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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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황

서황(徐晃, 169년 ~ 227년)은 중국 후한 말 ~ 삼국 시대 위나라의 장수로 (字)는 공명(公明)이며, 하동군(河東郡) 양현(楊縣)[1] 사람이다. 서개(徐蓋)의 아버지이며 서패(徐覇)의 조부이다.

생애[편집]

처음 이각(李傕)의 부하 양봉(楊奉)을 섬기며, 공적을 세워 기도위(騎都尉)에 임명되었다. 서황은 양봉에게 헌제(獻帝)를 데리고 낙양(洛陽)으로 돌아갈 것을 진언하였고, 양봉은 서황의 생각에 따라 헌제를 데리고 낙양으로 돌아왔다. 서황은 이 일로 도정후(都亭侯)에 봉해지게 된다. 양봉에게 조조에게 귀순할 것을 진언했고, 양봉은 이를 받아들였으나, 조조가 허로 천도하자 실망하여 조조와 대립했다가 본진인 양(梁)의 진영이 함락당해 원술에게로 망명했다.[2][3] 서황은 양봉이 몰락하면서 조조에게 귀순했다. 그 후 여포(呂布) 토벌 및 관도대전(官渡對戰), 마초(馬超) 토벌 등 많은 전투에 참가하여 무공을 세웠다. 특히 관도대전에서는 하후돈(夏侯惇)의 지휘하에 식량 수송 차량 속에 숨어 있다가 노략질하려고 덤벼든 문추(文醜)를 기습하여 하후돈과 힘을 합쳐 척살하기도 했다. 한중 전투 중에는 마명의 각도를 끊은 진식(陳式)을 무찌르기도 했다.[4]

219년 조엄(趙儼)과 함께[5] 형주로 가서 번성(樊城)을 포위한 관우(關羽)의 군대를 격퇴하여 조인(曹仁)을 구원하는 활약을 보였다. 서황은 신병을 거느렸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못해 제장들의 비난을 받았으나, 조엄의 조언,[5]동소의 조언을 받은 조조의 칙령을 따라[3] 구원군이 왔음을 알려 조인 군의 사기를 높이고, 조조가 여건 · 서상 등을 보내자 이들과 같이 싸웠다. 언성에 있던 적을 격파하여 포위망에 접근하였다. 이 공격 전에 조조가 은서 ·주개 등 12영을 더 지원했다. 서황은 위두를 공격하려는 척 하고 사총을 쳤고, 구원 온 관우의 군대도 대파해 마침내 번성의 포위를 풀었다. 조조는 서황의 공적을 손무, 전양저에 비하여 칭찬하였다.[4] 또한 이 전투의 승리를 축하는 연회를 개최할 때 조조는 서황에게 술을 권하고 그를 칭송했다. 이때 다른 군대도 집결하였는데, 다수의 군 병졸들은 위치했던 장소를 떠나 매우 어수선했지만, 서황의 군대만은 장병이 정연하게 진형을 갖추고 위치한 장소를 떠나는 이들이 없었다. 이걸 본 조조는 더욱더 서황을 두텁게 신뢰하여 "서황에게는 주아부(周亞夫)의 풍격이 있다."라고 아주 크게 칭찬했다고 한다.[4]

조비(曹丕)가 위나라의 황제가 되자, 서황은 우장군(右將軍)으로 승진하였고, 그 후 조위의 남방 군사를 총괄하는 하후상(夏侯尙)과 함께 상용(上庸)에서 유봉(劉封)을 격파했다.[4] 또 하후상, 조진, 장합과 함께 강릉성의 주연을 공격했으나 이기지 못했다.[3][6][7]

명제(明帝)의 시기에는 (吳)의 제갈근(諸葛瑾)을 격퇴하고 식읍 200호를 하사받아 총 3,100호을 가지게 되었다. 227년 병사하였고 시호는 장후(壯侯)이다.[4]

성품 · 전술[편집]

서황은 검약하며 신중하여, 장군이 되어서는 항상 멀리까지 척후 활동을 했다. 또 스스로 우연히 현명한 군주(조조를 말함)를 만났다 하여 교우 관계를 넓히지 않았다. 다만 관우장료와는 친히 지냈다 한다. 먼저 싸워서 이길 수 없다고 여기면 나중에 싸웠고, 추격할 때에는 장병들에게 식사 시간도 주지 않았다.[4] 도끼의 명수였다.

《삼국지연의》에서의 서황[편집]

삼국지연의》에서는 대부(大斧;큰 도끼)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무장으로 등장한다. 양봉의 부하로 등장하나, 조조의 부하가 된 친구 만총의 권유로 양봉을 떠나 조조에게 들어갔다. 관도대전에서는 안량(顔良)에게 일대 일로 대항하나 20합을 당해내지 못하고 도망쳤다.. 한중전투에서는 무리하게 배수진을 고집하여 부장인 왕평(王平)과 의견이 맞지않아 충돌하고 결과적으로 패하였으나 그 책임을 왕평에게 물어 왕평이 촉나라로 가버렸기에 격노하는(왕평이 서황의 부장이란 이야기는 창작) 등 급한 성질의 성격도 보여주지만, 관우와 일대일 결투에서 80합을 싸워도 물러서지 않는 등 위나라 굴지의 용장으로 묘사되었다. 또, 죽는 장면이 예전 촉나라 신하였던 맹달(孟達)의 배반을 응징하기 위해 선봉으로 출진했다가 맹달이 쏜 화살에 이마를 맞아 전사하는 장면으로 각색되었다.

주석[편집]

  1. 현재 산서성(山西省) 홍동현(洪洞縣)
  2. 진수: 《삼국지》 권1 무제기
  3. 위와 같음, 권14 정곽동유장유전
  4. 위와 같음, 권17 장악우장서전
  5. 위와 같음, 권23 화상양두조배전
  6. 위와 같음, 권47 오주전
  7. 위와 같음, 권9 제하후조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