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사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이각과 곽사

곽사(郭汜, ? ~ 197년)은 중국 후한 말의 무장으로, 양주(凉州) 장액군(張掖郡) 사람이다. 본명은 곽다(郭多)로 이는 그가 도적 시절에 사용하던 본명이며 동탁의 부하가 되면서 이름을 곽사로 불렀다. 이 때문에 이각은 곽사와 마찰이 생길 때마다 곽사를 곽다라고 불렀다.

생애[편집]

서량에서부터 동탁(董卓)을 따르다가 192년 동탁이 사도 왕윤(王允)에게 죽자 서량에서 동료 이각(李傕), 장제(張濟), 번조(樊稠) 등과 함께 10만 대군을 이끌고 장안(長安)으로 쳐들어가 왕윤동탁 제거에 참여한 사람들을 모두 죽였다. 이 과정에서 여포와 교전할때는 정식으로 일대일 결투를 하였으나 부상을 입고 물러났다.

194년 마등한수와 결탁해 장안을 공격해왔고 곽사는 번조와 함께 출격해, 마등군 1만명을 베었고 마등에게 협력한 강족도 격파하였다.

195년 2월 이각번조를 살해하였고 이각과 곽사는 서로를 공격하였다. 3월 이각후한 황제인 헌제를 위협해 자신의 영으로 옮기고 궁실을 불태웠다. 이후 곽사의 공격으로 화살이 임금 있는 곳까지 날아왔고 이각의 귀에도 화살이 적중하였다. 195년 6월 장제가 섬현으로부터 와서 둘을 화해시켰으며 7월 헌제가 동쪽으로 귀환하였고 곽사는 양봉,동승 등과 함께 이를 수행하였다. 8월 곽사는 헌제를 습격하고 무리에서 이탈하였고 이각, 장제 등과 힘을 합쳐 헌제를 추격하였으나 헌제가 구원을 요청한 조조(曹操)의 대공격으로 낙양 전투에서 완전히 군대가 괴멸되었다.

그 후 이각과 함께 도적이 되었으나 197년 미현에서 부하 오습(伍習)의 배신으로 죽임을 당했다.

훗날 동승의 술회(述懷)에 의하면 이각과의 전투에서 병사 수백 명으로 이각군 수만 명을 격파했을 정도로 강용한 무사였다고 한다.[1]

일화[편집]

  • 이각은 곽사와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매일 잔치를 베풀고 곽사에게 밥을 많이 먹였다. 어느 날 곽사가 이각의 잔치를 다녀온 후 복통으로 고통을 받게 되었는데 이각을 시기[2]한 곽사의 아내가 곽사에게 을 먹였다. 곽사는 아내가 준 똥을 먹고 이각이 먹인 음식을 다 토해냈다.
  • 곽사는 왕윤 사망 후 상황이 불리해진 여포의 도발에 넘어가 여포와 일기토를 떴다. 하지만 곽사의 무예는 그저 그런 수준인 데에 비해 여포는 천지를 진동시킬 정도의 뛰어난 무예를 가진 탓에 곽사는 여포와 일기토를 떠서 단숨에 쓰러졌다. 하지만 곽사의 부하들이 곽사를 데리고 나와서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

각주[편집]

  1. 선주전(先主傳) 주석 [헌제기거주(獻帝起居住)]
  2. 이각과 곽사는 노략질을 하는 친구사이로 곽사의 아내는 행여 이각이 궁녀를 약탈해다가 곽사에게 애첩으로 주는 것을 걱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