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미코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히미코(卑彌呼, 비미호 ? ~ 247년 또는 248년)는 일본의 여왕이다. 자신이 다스린 야마타이코쿠(邪馬台國)를 중심으로 하여 왜국을 지배하였다. 봉호는 친위왜왕(親魏倭王). 그녀가 죽은 후 친족인 일여(壹與)가 여왕으로 즉위 했다. 삼국지 위지왜인전(魏志倭人傳)과 삼국사기 신라본기 아달라 이사금 조에 기록되어있다.

한편 일본사에서는 조금 견해가 다른데 이 당시 일본의 천황은 진구 황후(재위 : 201년 ~ 269년)였다.

기록[편집]

삼국지[편집]

원문[편집]

其國本亦以男子爲王,住七八十年,倭國亂,相攻伐歷年,乃共立一女子爲王,名曰卑彌呼,事鬼道,能惑衆,年已長大,無夫婿,有男弟佐治國。自爲王以來,少有見者。以婢千人自侍,唯有男子一人給飲食,傳辭出入。居處宮室樓觀,城柵嚴設,常有人持兵守衛。

삼국지 권 30

번역[편집]

삼국지 위지왜인전(魏志倭人傳)에 의하면 야마타이 국은 본래 남자를 왕으로 삼았는데, 70~80년을 지나 왜국이 어지러워져서 몇 해 동안이나 서로 싸우다가, 이윽고 함께 한 여자를 왕으로 삼으니 이름이 히미코였다. 중국 위나라 황제인 조예(曹叡)에게 손자인 난승미를 사신으로 보내 조공을 바쳤으며, 이 때부터 야마타이 국은 위나라의 신하 국가가 되었다. 다음은 그녀를 보는 사람은 적었고, 단지 한 명의 남자만이 음식을 올리고 동시에 그녀의 곁에 출입을 하고 있었다. 궁전은 누각이나 성벽을 위나라 낙양성을 모델로 만들었기 때문에 어렵게 만들었다고 하였다. 그녀가 죽고, 왜인은 그녀의 무덤을 직경 백여보가 되는 큰 무덤을 만들었고, 노비 백여명을 순장을 하였다.


삼국사기[편집]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하면 173년 왜 여왕 히미코가 신라에 사자를 보냈다고 한다.

사망[편집]

위지왜인전에는 히미코의 죽음이 기록되어있다.

卑彌呼以死, 大作冢, 徑百餘歩, 狥葬者奴婢百餘人. (히미코가 사망하여, 직경 100여보의 큰 무덤이 만들어서 노비 100여명이 순장되었다.)

삼국지, 위지왜인전(魏志倭人傳)

기록은 247년에 야마타이고쿠(邪馬台國)와 구노국(狗奴國)의 분쟁이 일어났다는 기록이다. 히미코의 죽은 뒤에 연도의 기재는 되어 있지 않고, 그 후도 연도의 기재가 없는 채로, 1년에 걸쳐 일어났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양의 기록이 있어, 복수년에 걸친 기록일 가능성이 높지만, 히미코의 사망연도가 247년 혹은 248년인지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나뉘고 있다. 또 247년의 기록은 240년에 제준(梯儁)을 파견하여 이후의 왜국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보고하여, 히미코의 죽음도 240년부터 246년까지 구노국과의 분쟁이 일어난 사건으로 추정된다.

히미코가 죽었던 시기는 야요이 시대로부터 고훈 시대로 가는 시기로, 야마타이국 기나이설은 하시하카 고분(箸墓古墳, 궁내청에서는 야마토토토히모모소히메노미코토(倭迹迹日百襲媛命)의 무덤이라고 한다.)이 히미코의 무덤이라고 하는 설도 있다. 큐슈설은 히라바루이세키(平原遺跡) 유적을 히미코의 무덤이라는 설이 있다.

천문학자 제등국치(斎藤国治)는 248년 9월 5일 아침에 북큐슈에서 개기일식이 일어난 것을 주장하여 이것이 히미코의 죽음이 관계된 주장하였다. 이자와 모토히코(井沢元彦)도 이 설을 지지하였다. 게다가 야스모토 히덴(安本美典)은 247년 3월 24일 저녁에도 북큐슈에서 개기일식이 일어난 것을 지적하여, 247년의 일식이 원인으로 히미코가 살해당하여 일식이 원인으로 남자 국왕을 대신하여 일여가 즉위 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설은 야마타이국 북큐슈설이나 히미코 아마테라스설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그러나, 현재는 어느 일식도 야마타이국의 비정지인 큐슈나 기나이의 일식현상은 부분일식이며, 부분일식은 반드시 드문 현상은 아니고, 일식과 히미코의 죽음의 관련성은 의문시되고 있다.

만세일계와 관련된 논란[편집]

일본에서는 천황가의 혈통을 만세일계로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히미코와 그의 일족에 의한 일본 통치 기록을 삭제했다는 주장이 있다. 그 증거로 일본서기에서는 제10대 스진 천황에서부터 제16대 닌토쿠 천황까지 각각의 천황들이 모두 수십년(40년~99년)의 치세와 100살이 넘는 수명(100살~140살)을 가졌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히미코 일족의 120년에서 200년 이상의 통치를 삭제하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한 수단으로 행해진 것이며 당시 고대 일본의 평균수명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터무니없는 기록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주석[편집]


외부 고리[편집]

전 임
-
제1대 야마타이국여왕
? ~ 247년 또는 248년
후 임
이요(壹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