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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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흥(關興, 193? ~ ?)은 중국 삼국 시대 촉한의 관료다. 하동군 해현 사람으로, 는 안국(安國)이며, 관우(關羽)의 차남이다. 요절하여 사서에 남은 기록은 빈약하나, 소설 《삼국지통속연의》에서 관우의 아들임을 내세워 많이 각색해, 소설 후반부에 조연으로 많이 등장한다.

사서의 관흥[편집]

전은 《삼국지》 관우전에 부기되었다. 아버지 관우 사후 그 작위를 계승하였다. 영특하여 재상 제갈량(諸葛亮)에게 총애를 받았고 약관의 나이에 시중·중감군이 됐으나, 몇 년 후 죽었다.[1]

관흥은 삼국지연의와는 달리 무예보다는 행정능력이 비교적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후손[편집]

관흥 사후, 적자인 관통(關統)이 관흥의 작위를 물려받았으며, 관통이 죽자 후계가 없어 관통의 서제 관이(關彛)가 그 뒤를 이었다.[1] 263년, 촉한이 멸망할 때 관우가 죽였던 방덕(龐德)의 아들 방회(龐會)가 관우의 후손들을 몰살시킬 때 관이 또한 죽어 관흥의 후손은 끊겼다.[2] 하지만 몇 년 전에 관우의 60여대 후손이 발견되고, 족보 또한 신빙성이 있는데 사실 이 때 발견된 관우의 후손은 관우의 장남이자 관흥의 형인 관평의 후손이며 관흥의 후손은 방회에 의해 끊긴 것이 사실이다. (관우의 장남쪽으로 대가 이어진 것이 밝혀진 이상, 방회에 의해 관우의 후손이 완전히 멸족되었다는 이야기는 틀리다.)

삼국지연의의 관흥[편집]

제77회에 처음 등장해, 관우가 우금(于禁)을 무찌른 것을 전했다.

이후, 이릉 싸움을 앞두고 장비의 아들 장포(張苞)와 함께 선봉을 다투다가 유비의 꾸지람을 받고 서로 아버지들과 마찬가지로 결의형제를 맺었다. 장포와 함께 이릉 싸움에서 활약하여, 아버지를 사로잡아 죽인 반장(潘璋)을 죽여 원수를 갚고 아버지의 주요 유품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를 되찾았다. 아버지의 유업을 계승하여 촉한을 위해 헌신하고 여러 전쟁에서 활약하였다. 제갈량이 최후의 오장원 북벌(北伐)을 준비하고 있을 때 병사하였다.

주석[편집]

  1. 진수: 《삼국지》 권36 관장마황조전
  2. 왕은: 《촉기》 (위의 삼국지 권36에 배송지가 주석으로 인용한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