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 소제 (1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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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황제 유변(漢 少皇帝 劉辯, 173년 ~ 190년)은 후한(後漢)의 제13대 황제이다. 189년 영제(靈帝)를 이어서 황제에 올랐으나 동탁에 의해 폐위되어 홍농왕(弘農王)으로 강등당하고, 이듬해인 190년 살해되었다. 시호는 회(懷)로 홍농왕, 홍농회왕(弘農懷王) 등으로도 불린다.

생애[편집]

173년 영제(靈帝)의 장남이자, 하태후(何太后)의 소생으로 태어났다. 중평(中平) 6년(189년) 4월 병진일(丙辰日), 영제가 가덕전(嘉德殿)에서 붕어하자 이틀 후 제위에 올랐다. 천하에 대사면령을 내리고, 연호를 광희(光熹)로 고치는 한편 동생 유협(劉協)을 발해왕(渤海王)에 봉하였다.

189년 9월 22일, 십상시가 하진을 죽이고, 소제와 하태후, 그리고 진류왕(陳留王)을 인질로 잡고 정권을 잡으려 하였다. 하지만 십상시 토벌을 강력하게 주장해온 하진의 부하인 원소(袁紹)는 궁궐을 포위하고 수많은 궁궐 내의 수많은 환관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도중에 하태후는 인질에서 풀려났다.

9월 24일, 황제를 인질로 잡고 있던 장양(張讓)과 단규(段珪)를 비롯한 환관 세력들은 상황이 자기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황제를 데리고 북쪽으로 달아나 강가로 도망갔다. 노식(盧植)과 민공(閔貢)이 이들을 뒤쫒아가 환관 세력들을 추적하고 환관들을 죽이며 장양과 단규의 환관들을 포위하자, 장양과 단규가 황제에게 엎드려 울며 절하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모두 물에 빠져 들어 죽었다. 후한서 장양전에 따르면 마지막 말은 "臣等殄滅,天下亂矣。惟陛下自愛!"이었다고 한다.

9월 25일, 소제와 진류왕은 원소와 함께 낙양으로 환궁했다. 9월 28일에는 동탁이 소제를 홍농왕(弘農王)으로 강등시키고 진류왕을 황제로 추대하였다. 폐위된 소제와 소제의 어머니 하태후는 감금되었다.

죽음[1][편집]

동탁은 낭중령(郞中令) 이유(李儒)로 하여금 소제를 독살하도록 하였다. 이유는 소제에게 독약을 바치며 말하였다.

이 약을 드시면 병환이 낫게 될 것입니다.

소제는 꿍꿍이를 알아차리고 답하였다.

나는 병에 걸리지 않았다. 나를 죽이려는 것이로구나!

그러나 이유는 억지로 약을 권하였고, 소제 또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소제는 당희(唐姬) 및 궁인들을 불러모아 이별연을 벌였고, 술잔이 돌자 슬퍼하며 노래를 불렀다.

天道易兮我何艱 (천도이혜아하간) 하늘은 내게 쉬이 시련을 주는구나
棄萬乘兮退守蕃 (기만승혜퇴수번) 만승(萬乘;천자의 자리)을 버리고 울타리를 지키는데
逆臣見迫兮命不延 (역신견박혜명불연) 역신이 겁박하니 목숨 잇지 못하네
逝將去汝兮適幽玄 (서장거여적유현) 앞으로 너를 떠나 저승으로 가겠구나!

이어서 당희에게 일어나 춤출 것을 명하니, 당희는 소매를 들고 노래하였다.

皇天崩兮后土穨 (황천붕혜후토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어그러지니
身爲帝兮命夭摧 (신위제혜명요최) 몸은 임금이나 목숨 일찍 스러지네
死生路異兮從此乖 (사생로이혜종차괴) 생사의 길이 달라 이렇게 이별하니
奈我煢獨兮心中哀 (나아경독충심중애) 나 어찌 외로워 슬프지 않겠는가!

그리고는 울며 오열하니, 좌중이 모두 흐느꼈다. 소제가 당희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임금의 아내이니, 백성에게 개가하지 말고 자신을 아끼시구려. 이제 긴 말을 따라야겠소!

말을 끝마치고 소제는 독약을 먹고 죽었다. 이때 그의 나이는 열여덟 살이었다.

동탁의 소제 폐위에 대한 변[편집]

삼국지 동탁전에서는

孝靈皇帝不究高宗眉壽之祚, 早弃臣子. 皇帝承紹, 海內側望, 而帝天姿經佻, 威儀不恪, 在喪慢惰, 衰如故焉. 凶德旣彰, 淫穢發聞, 損辱神器, 忝汚宗廟. 皇太后敎無母儀, 統政荒亂. 永樂太后暴崩, 衆論惑焉. 三網之道, 天地之紀, 而乃有闕, 罪之大者. 陳留王協, 聖德偉茂, 規矩邈然, 豊下兌上, 有堯圖之表. 居喪哀戚, 言不及邪, 岐嶷之性, 有周成之懿. 休聲美稱, 天下所聞, 宜承洪業, 爲萬世統, 可以承宗廟. 廢皇帝爲弘農王. 皇太后還政.

효령황제(孝靈皇帝)는 고종(高宗)들이 미수(眉壽)를 누리던 복을 다하지 못하고 일찍 신자(臣子)들을 버리셨다. 황제가 승소(承紹)하니 해내에서 측망(側望)했으나, 황제는 하늘에게서 받은 품성이 경박하고 위의(威儀)에 있어 삼가지 못해 상을 당해 만타(慢惰)하여 쇠(衰)함이 예전과 같았다. 흉덕(凶德)이 이미 두드러지고 음예(淫穢)함이 드러나 신기(神器)를 욕보이고 종묘(宗廟)를 더렵혔도다. 황태후의 가르침에 모의(母儀)가 없어 통정(統政)이 거칠고 어지러워졌다. 영락태후(永樂太后)께서 갑자기 붕어하시니 중론에서는 이를 미심쩍어하였다. 삼강의 도(三綱之道)와 천지의 기(天地之紀)에 허물이 있게 되었으니 그 죄가 크도다. 진류왕 협(協)은 성덕(聖德), 위무(偉茂)하며 규구(規矩), 막연(邈然)하여 아랫사람을 넉넉히 대하고 윗사람을 기쁘게 하니 요임금의 겉모습이 있도다. 상을 치루며 슬퍼하고 서러워하고 삿된 것을 말하지 않으니 기억(岐嶷-어릴때부터 재능이 뛰어남)의 성정으로 주성(周成-주성왕)의 아름다움이 있다. 휴성미칭(休聲美稱)이 천하에서 들리니 의당 홍업(洪業)을 이어받아 만세를 통하여 가히 종묘를 받들만하다. 황제를 폐하여 홍농왕으로 삼고, 황태후는 섭정으로 복귀한다.

삼국지연의 제4장에서는

孝靈皇帝, 早棄臣民, 皇帝承嗣, 海內側望. 而帝天資輕佻, 威儀不恪, 居喪慢惰, 否德旣彰, 有忝大位. 皇太后敎無母儀, 統政荒亂. 永樂太后暴崩, 衆論惑焉. 三綱之道, 天地之紀, 毋乃有闕? 陳留王協, 聖德偉懋, 規矩肅然, 居喪哀戚, 言不以邪, 休聲美譽, 天下所聞, 宜承洪業, 爲萬世統. 茲廢皇帝爲弘農王, 皇太后還政, 請奉陳留王爲皇帝, 應天順人, 以慰生靈之望.

효령황제(孝靈皇帝)께서 일찍이 돌아가신 후 해내(海內)가 모두 황제를 우러러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황제는 천품이 경박하여 위엄도 갖추지 못하고 상(喪)까지 태만히 입는 등 비루한 덕이 이미 밝게 나타나 대위(大位)만 더럽히고 있도다. 황태후 역시 가르침에 만민의 어머니다운 모습이 없고 정사마저 거칠고 무질서하다. 영락태후(永樂太后)의 돌연한 죽음과 관련하여 의혹이 많다는 중론이다. 그래서 삼강(三綱)의 도와 천지의 기(紀)가 어쩔 수 없이 끊겨 어디로 갔는가? 진류왕 협(陳留王協)은 성덕(聖德)이 크고 짙으며 규구(規矩)가 반듯할 뿐만 아니라 상도 애절하게 입고 말씀에도 사특함이 없어 천하의 기림을 받고 계시니, 마땅히 황업(皇業)을 이어 받아 만대에 전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에 황제를 폐하여 홍농왕(弘農王)으로 삼고 황태후의 섭정을 환수하며 진류왕을 청해 황제로 받드노니, 이것은 하늘과 사람의 뜻에 순응하는 것이고 생령(生靈 :백성 )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다. (정소문 삼국지)

친족관계[편집]

주석[편집]

  1. 범엽(范曄), 《후한서(後漢紀)》 황후기(皇后紀) 下
전 임
아버지 후한 영제 유굉
제13대 중국 후한 황제
189년 음력 4월 병진일 ~ 189년 음력 9월 갑술일
후 임
이복동생 후한 헌제 유협
전 임
아버지 후한 영제 유굉
중국 황제
189년 음력 4월 병진일 ~ 189년 음력 9월 갑술일
후 임
이복동생 후한 헌제 유협
전 임
-
(첫 봉건)
제1대 후한의 홍농왕
189년 음력 9월 갑술일 ~ 190년 음력 1월 계유일
후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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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국 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