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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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책(孫策, 175년 ~ 200년)은 자가 백부(伯符)로 중국 후한 말의 군웅이다. 손견의 장남이자 오 대제 손권의 형이다.
[편집] 생애
어릴 적부터 용맹하고 지략이 있어 손견이 많이 총애하였다. 한 점쟁이가,
- “손견의 다섯 아들 중 차남 권(權)이 가장 뛰어난 인물이 될 것이다.”
라고 예언하였음에도, 손견은 손책이 장남이라서 그랬는지 손책을 많이 아꼈다. 손책은 손견과 함께 17세의 나이에 유표와의 전투에 종군하였으나, 이 전투에서 부친 손견의 사망을 보아야 했다. 손견 사후 손책은 원술(袁術)의 휘하에 있으면서 아버지의 수하들과 함께 모의, 손견이 낙양에서 얻었던 옥새를 원술에게 헌상하는 대신 군사를 빌렸다. 손책은 이 군대로 양저우에 근거하던 왕랑, 엄백호, 유요 등을 공격, 강남을 평정하였다. 젊은 시절, 이와 같은 손책의 용맹은 그를 소패왕(小覇王)이라 불리게 하였다. 유요를 치는 과정에서 유요 휘하의 맹장인 태사자(太史慈)와 수차례 싸워 결국 손책이 사로잡아 휘하에 두었다. 이 때 태사자는 유요의 잔병을 모으고 돌아오겠다며 진지를 떠나자 손책의 수하들은 태사자의 이런 결정을 허락한 손책을 나무랐다. 그러나 손책은 태사자를 끝까지 믿었고, 태사자는 잔병들을 모아 돌아왔다. 이처럼 손책은 무재와 지략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사람을 믿을 줄 알았다. 손책이 양주를 평정한 후, 원술이 손책에게 받은 옥새를 이용하여 제위에 오르려 하자 이에 반대하였다. 그러나 결국 원술이 황제를 참칭하고 성(成)을 건국하자, 조조는 손책의 원술 제위 등극 반대를 알고 손책과 손을 잡는 편이 이롭다 하여 그를 오후(吳侯)에 봉하고 혼인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대사마를 요구하는 손책의 청을 조조가 거절하여, 두 세력의 사이는 냉소적으로 변하였다. 200년 조조와 원소(袁紹)가 관도에서 대치하고 있을 때 손책은 허창을 기습, 헌제(獻帝)를 옹립하려 하였으나 실행에 옮기기 전에 죽었다.
사후, 손권이 제위에 오르자 장사환왕(長沙桓王)으로 추증되었다.
[편집] 《삼국지연의》에서의 손책
《삼국지연의》에서 손책은 양주의 도사 우길의 도술이 망령된 것이라 하여 우길을 죽였고, 우길의 혼령이 손책을 괴롭히다가 결국 손책이 사냥 중 허공의 수하에게 죽임을 당한 것으로 나와 있다.
[편집] 손책의 친족관계
- 손견 (부친)
- 손정 (숙부)
- 대교 (부인)
- 손소 (장남)
- 손봉 (손자)
- 육손 (사위)
- 육항 (외손자)
- 주유 (의제)
- 소교 (처제)
- 손권 (동생)
- 손익 (동생)
- 손광 (동생)
- 손랑 (동생)
- 손소 (동생)
- 손상향 (동생)
- 유비 (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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