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손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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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술(公孫述, ? ~ 36년)은 중국 후한(後漢) 초기의 무장이다. 자는 자양(子陽)이다. 처음에는 왕망(王莽)을 섬겼으나, 후에 청두(成都)에서 병사를 일으켜 파촉을 평정하고, 25년에 천자(天子)라 칭하고 국호를 성가(成家) 또는 성(成)이라고 하였다. 신나라 안은 군웅이 할거하고 있었는데 , 장안에 적미(赤眉), 농서에 외효, 하서(河西)에 공손술(公孫述), 수양(雖陽)에 유영(劉永), 노강(盧江)에 이헌, 임치에는 장보등이 막강한 영향력을 지녔다.

유수가 광무제로 즉위한 후, 벽지인 진(秦)땅에 웅거하는 외효(隗囂)와 역시 산간 오지인 촉(蜀)땅의 성도(成都)에 거점을 둔 공손술(公孫述)만은 항복해 오지 않았다. 중신들은 계속 이 두 반군의 토벌을 진언했다. 광무제에게 멸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