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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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봉(劉封, ? ~ 220년)은 중국 후한 말의 무장이다.

생애[편집]

촉한(蜀漢)의 소열제(昭烈帝) 유비(劉備)의 양자이다. 본래 유봉은 나후(羅侯)의 구씨(寇氏)의 아들이며 유표(劉表)의 조카 유반의 외조카이다.

유비에게 후사를 이을 아들이 없었을 때 유반의 중개로 유봉은 동생 유강(劉剛)과 같이 유비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유비익주(益州)를 칠 때 출진하여 용맹을 떨쳤다. 익주가 평정된 후, 부군중랑장에 임명되었다.

219년, 방릉을 공격한 맹달(孟達)이 상용(上庸)을 공격하려 하자 유비의 명령을 받아 한중에서 군사를 이끌고 맹달의 주장이 되어 함께 상용으로 가 태수 신탐(申耽)의 항복을 받아냈다. 이 공으로 부군장군에 임명되었다. 조인(曹仁)을 번성으로 몰아넣은 관우(關羽)의 원군 요청을 받았으나, 상용을 점령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역을 평정하는 데에 함부로 군대를 뺄 수 없다 하고 원군을 파견하지 않았다. 결국 관우손권(孫權)에게 패하여 참수되었다. 유봉과 맹달은 이로 인해 유비의 원망을 받았다. 이후 유봉과 맹달이 불화하여 유봉이 맹달의 군악대를 빼앗았고, 분노한 맹달위나라에 투항하였다.

나라의 정남장군 하후상(夏侯尙), 우장군 서황(徐晃)은 맹달과 함께 유봉을 공격했다. 맹달은 유봉이 곧 숙청될 것을 예감하고 유봉에게 로 귀순할 것을 제의하였으나 거절하였다. 신탐의 아우 신의(申儀)가 유봉을 배반하였고, 유봉은 깨져 성도(成都)로 달아났으며, 신탐은 위에 항복했다. 유봉이 도착하자 맹달을 핍박하고 관우를 돕지 않은 것에 대한 유비의 문책과 제갈량(諸葛亮)의 견제로 자살 명령을 받았다. 이 때서야 유봉은 맹달의 제의를 거절한 것에 대해 후회하였다고 한다.

유봉의 친족 관계[편집]

  • 양아버지: 유비
  • 동생: 유강; 위나라에 항전하다 죽었다.
  • 아들 : 아문장군 유림(劉林); 촉한이 망하자 하동군으로 이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