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 (진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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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
 ? ~ 기원전 257년
Bai Qi.jpg
명나라 때 그려진 그림.
태어난 곳 미현(郿县)
죽은 곳 두우(杜邮)
별명 무안군
복무 진나라
복무 기간 기원전 294년 ~ 기원전 257년
최종 계급 상장군(上将军)
주요 참전 이궐 전투,
장평 대전

무안군 백기(중국어: 白起, 병음: Bai Qi 바이치[*], ? ~ 기원전 257년 11월)는 중국 전국시대 진나라의 명장이다. 현 섬서성 출신으로 소양왕을 받들어 조나라, 위나라, 초나라를 공격하여 진나라의 영토를 크게 넓혔다.

생애[편집]

아래는 《사기》 〈백기왕전열전〉에 의거한 기록이다.

기원전 294년에 좌서장(左庶長)에 임명되어 한나라의 신성(新城)을 공격했다. 이듬해인 기원전 293년에 한나라와 위나라를 공격해 이궐 전투에서 승리, 24만 명을 잡아 죽이고 한나라 장수 공손희를 포로로 잡았으며 5개 성을 함락시켰다. 기원전 292년에 위나라를 공격해 크고작은 61개 성을 함락시켰다. 기원전 278년에 초나라를 공격, 수도인 영성(郢)을 함락시켰다. 이 바람에 초나라는 수도를 옮겼다. 같은 해 무안군(武安君)의 작위를 받았다. 기원전 275년에 한나라·위나라·조나라 연합군과 싸워 13만 명을 잡아 죽였다. 조나라 장수 가언(賈偃)과 싸워 그 휘하 병졸 2만 명을 황하에 빠뜨려 죽였다. 기원전 265년에 한나라 형성(陘城)을 공격해 5개 성을 함락시키고 5만 명을 잡아 죽였다. 기원전 260년장평 대전에서 조나라와 정면충돌, 조괄이 이끄는 조나라 군대를 대파시켰다. 이때 40만 명이나 되는 포로들을 먹여살릴 식량이 없어서 소년병 240명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조리 생매장해 죽였다. 《사기》의 장평 대전 포로 40만 학살사건은 오랫동안 고대사 특유의 과장으로 여겨져 왔으나, 1995년 5월에 산서성에서 해골더미가 대량으로 출토되어 연구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 즈음, 진나라 본국의 재상 범수가 장평 대전에서 백기의 활약으로 자신의 입지가 좁아질 것을 우려해 조나라의 수도 한단까지 쳐들어 가려고 하는 백기를 소환한다. 기원전 259년에 진나라는 왕릉(王陵)과 왕릉(王齕)을 시켜 한단을 포위하지만 조나라를 구원하러 온 위나라 신릉군, 초나라 춘신군에게 대패를 당한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다시 백기를 출동시키려 했으나, 백기는 범수의 행동에 불신감을 느끼고 병을 핑계삼아 출동을 거부했다. 이로 인해 입지가 더욱 좁아진 백기는 기원전 257년에 소양왕의 명령으로 두우(杜邮)에서 자살했다. 백기는 죽기 직전에 “장평에서 40만 포로를 하룻밤 사이 파묻어 죽여서, 하늘에 죄를 짓고 죽는다”고 한탄하고 죽었다. 진나라 백성들은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겨 각지에서 제사를 지냈다.

평가[편집]

사마천은 《사기》 〈백기왕전열전〉 말미에서 “백기는 적의 능력을 잘 파악했으며 이에 따라 전략을 능란히 바꾸어 무한한 전술로 천하를 진동시켰다.”라고 격찬했다. 그러나 동료인 범수와 사이가 틀어져 최후를 맞게 되기까지 과정을 지적하며 왕전과 함께 유능한 군인이지만 인간적 결점이 존재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삼국지 위서》의 〈등애전〉에서 등애가 누명을 쓰고 죽기 전에 스스로를 백기에 비유해 한탄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