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춘추 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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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衞)는 주나라의 제후국이자 춘추 전국 시대의 주요 국가 중의 하나이다. 그 작위는 후작으로, 유력한 동성 제후국 중의 하나였다. 위나라는 상(商)이 주에 의해 멸망한 직후 주 무왕의 친동생인 강숙이 상의 수도 조가(朝歌)와 그 주위의 땅에 봉해짐으로써 세워졌다. 처음의 봉호는 위가 아니었으나 점차 그 영토가 성장함으로써 국호를 위로 바꿨다.
《사기》에 따르면, 처음 강숙이 봉토를 받은 후 2대 위 강백부터 7대 위후인 위 정백까지 '백'으로 일컫다가 위 경후 때에 주 이왕에게 뇌물을 바치고 '후'를 칭했다. 이에 대해, 사마정은 《사기색은》에서 《강고》에 강숙을 “맹후”라 부른 구절을 들어, 강숙은 후작이었고 또 제후의 맏이(맹)로서 '방백'이었기 때문에 이후 강숙의 후예들이 '백'을 칭한 것은 '방백'의 의미며, 사기에 경후 때에 뇌물을 바쳐 후작이 되었다는 것은 이때에 방백의 권위를 잃어 보통의 제후와 같은 칭호를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원전 771년 견융에 의해 서주의 수도 호경이 함락되었을 때 주 평왕의 요청으로 위 무공이 진(晉), 진(秦)과 함께 견융을 몰아낸 공으로 공작이 되었다. 이때 위 무공이 주 왕실의 사도가 됨으로써 위나라는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나 위 무공이 사망한 후 공자들 간의 계승문제로 공실이 혼란에 빠졌고 국력이 점점 약화되었다. 기원전 718년에 위 선공이 즉위함으로써 이 혼란은 진정되었다. 하지만 훗날 위 혜공, 의공의 학정으로 계속적으로 국력을 약화시켰고, 기원전 660년에 결국 북적의 침공으로 수도 조가가 함락되고 의공은 살해되었다.
곧 위 대공을 거쳐 위 문공이 즉위하여, 제 환공의 도움을 받아 수도를 초구(楚丘)로 옮겨 나라를 수습하였다. 이후 북적의 계속된 침입으로 제구(帝丘)로 또 천도하였으며, 북적의 침입 등으로 국력이 계속해서 약화되어 전국시대 초기에는 조와 제, 초, 위(魏)의 압박을 받았고, 기원전 343년에는 위(魏)나라가 침공하여 위 성후를 폐위시키고 방계인 자남경(子南勁)을 위 평후로 삼음으로써 희성의 계보가 끊어졌다. 이후 작위가 군(君)으로 떨어지는 등 위(魏)의 속국으로 전락하였다. 기원전 241년에는 진(秦)이 위(魏)를 침공하면서 위나라의 영토인 제구(帝丘) 주변에 동군(東郡)을 설치하고 야왕현(野王縣)에 위군 각을 봉함으로써 위는 사실상 멸망하였다. 위군 각은 기원전 209년 진 이세황제 호해에 의해 폐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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