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춘추 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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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周) 제후국
초(楚)
국성 미성 웅씨(羋姓 熊氏)
작위 자작
수도 단양(丹陽)
영(郢)
진(陳)
수춘(壽春)
분봉자 성왕(成王)
시조 웅역(熊繹)
존속기간 기원전 11세기 ~ 기원전 223년
멸망원인 (秦)나라에게 멸망
출전 사기(史記)》 권40 초세가(楚世家)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환공(桓公) 2년부터
기원전 300년의 초나라
장강 유역도

(중국어: , 병음: Chu, 기원전 11세기 ~ 기원전 223년)는 현재의 후베이성(중국어: 湖北省, 병음: Húběi Shěng)인 장강(중국어: 長江, 병음: Cháng Jiāng) 중류 지역에서 일어난 중국춘추전국시대의 나라이며, 춘추오패, 전국칠웅의 하나이다. 갑병 수십만, 전차 천승(乘) 기병 1만기를 낼 수 있었다. 미(羋)성 웅(熊)씨의 제후국이다.

황하 문명을 대표하는 주나라에 대해 장강 문명을 대표하는 나라로 분류된다. 형(荆) 또는 형초(荆楚)로도 불린다. 중국 남방계 민족의 정체성을 가진 제후국이다. 중국과학원의 발육생물학연구소 위안이다(袁義達) 연구에 따르면 전국 시대 초, 오, 월이 있었던 저장성, 안휘성, 강소성의 중국 남부 사람들은 중국 북부 사람들과 유전자 구조상 차이가 존재한다고 한다.

주나라 초기의 작위(爵位)는 자작(子爵) 이었으나, 기원전 704년 무왕(武王)때에 이르러 스스로 왕을 칭하였고, 전국시대 말인 기원전 223년 (秦)에 의해 멸망 했다. 그 뒤 기원전 208년 회왕의 후손인 의제에 의해 다시 부활하였으나 기원전 202년 초한전쟁에서 항우전한 고조 유방에게 패함으로써 완전히 멸망한다.

역사[편집]

사마천사기 초세가(楚世家)에 따르면, 초나라는 삼황오제의 한 사람인 전욱 고양(顓頊 高陽)의 후손이 세운 나라다. 전욱(顓頊)은 창의(昌意)의 아들이다. 후손 육종(陸終)은 축융(祝融)의 동생으로 제곡 고신(帝喾 高辛)때 화정(火正, 고대 중국의 불을 맡은 벼슬)을 지낸 오회(吳回)의 아들이다. 주문왕(周文王) 때 계련(季連)의 후손 중에 육웅(鬻熊)이 있었는데 초나라 웅씨(熊氏)들의 시조이다.

육웅(鬻熊)의 증손자 웅역(熊繹)에 이르러 주 성왕(周成王)은 주나라 건국시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을 도운 공신들의 후손들을 찾아내어 논공행상을 할 때 웅역의 증조부인 육웅이 세운 공로로 웅역을 형만(荊蠻)의 땅에 자작(子爵)의 작위에 봉했으나 그 봉지는 남작(男爵)에 준해서 하사하고 미(羋)라는 성을 내렸다. 웅역은 봉지의 도읍을 단양(丹陽)[1]에 두었다.

주 이왕(周 夷王)때에 이르러 주왕실의 세력이 쇠약해지자 웅거(熊渠)는 군사를 일으켜 용(庸)[2]과 양오(楊奧[3])에서 악(鄂)[4]에 이르기까지의 땅을 정벌하여 초나라의 영토로 삼았다. 웅거는 이후 잠시 왕이라 참칭(僭稱)하다가 포악한 여왕(厲王)이 즉위하자 정벌당하는 것이 두려워 왕이라 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기원전 741년에 웅통(熊通)이 초 자작위에 올랐는데 그가 초 무왕(楚 武王)이다. 기원전 704년 웅통은 스스로 왕이라 칭하고 복(濮)[5] 땅을 개간하여 초나라 땅으로 삼았다.

기원전 690년 초 무왕의 뒤를 이은 초 문왕(楚 文王)은 도성을 단양(丹陽)에서 영도(郢都)로 옮겼고, 기원전 638년 등(鄧)나라를 정벌하여 멸하고 초나라 땅으로 만들었다.

기원전 637년 송 양공(宋 襄公)이 회맹을 하려고 제후들을 우(盂)[6]에 소집을하자 초 성왕(楚 成王)은 회맹장에 군사를 매복하여 송 양공을 잡았다가 풀어 주었다. 기원전 631년 기나라(夔)[7]가 조상인 축융과 육웅의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멸망 시켰다. 그해 여름 성복(城濮)에서 당진(唐晉)과의 싸움에서 대패하였다.[8] 기원전 626년 태자(太子) 상신(商臣)이 왕이 자신을 폐하려 하자 난을 일으켜 초 성왕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그가 초 목왕(楚 穆王)이다.

기원전 614년 려(旅)가 목왕의 뒤를 이어 초왕이 되었는데 춘추오패 중의 한사람인 초 장왕(楚 莊王)이다. 초나라는 이후 장강 이남의 지역을 호령하는 나라로서 맹위를 떨쳐 나갔으나 초왕 부추(負芻) 때에 이르러 기원전 223년 진나라(秦)에 장군 왕전(王翦)의 공격으로 대장군 항연(項燕)과 왕 부추가 사로잡히고 남은 세력들도 모두 기원전 223년 진나라의 장군 왕전의 아들 왕분몽염에게 항복하면서 멸망하였다. 초한 챙패기에 초 의제(楚義帝)를 군주로 세우고 서초(西楚)가 재건되었으나, 항우한나라 유방에게 패망하고 잔존 세력은 한나라에게 항복하였다.

역대 군주[편집]

대수 칭호 재위기간 비고
1 (繹) 주 왕실로부터 자작(子爵) 벼슬을 받음.
2 (艾)
3 (黵)
4 (勝)
5 (楊)
6 (渠)
7 무강(毋康)
8 지홍(摯紅)
9 (延)
10 (勇) 기원전 847년 ~ 기원전 838년
11 (嚴) 기원전 837년 ~ 기원전 828년
12 (霜) 기원전 827년 ~ 기원전 822년
13 (徇) 기원전 821년 ~ 기원전 800년
14 (咢) 기원전 799년 ~ 기원전 791년
15 약오(若敖) 의(儀) 기원전 790년 ~ 기원전 764년 약오 · 소오 이래로 초나라는 남방에서 가장 강한
국가가 되어, 수(隨)나라와 어깨를 겨룸.
16 소오(霄敖) 감(坎) 기원전 763년 ~ 기원전 758년
17 분모(蚡冒) 순(眴) 기원전 757년 ~ 기원전 741년
18 무왕(武王) 통(通) 기원전 740년 ~ 기원전 690년 분모의 동생. 분모의 아들을 죽이고 임금이 됨.
주 환왕(周 桓王)때 칭왕함.
19 문왕(文王) 자(貲) 기원전 689년 ~ 기원전 675년
20 장오(堵敖) 간(囏) 기원전 674년 ~ 기원전 672년
21 성왕(成王) 군(頵) 기원전 671년 ~ 기원전 626년
22 목왕(穆王) 상신(商臣) 기원전 625년 ~ 기원전 614년
23 장왕(莊王) 려(旅) 기원전 613년 ~ 기원전 591년
24 공왕(共王) 심(審) 기원전 590년 ~ 기원전 560년
25 강왕(康王) 소(昭) 기원전 559년 ~ 기원전 545년
26 겹오(郟敖) 균(麇) 기원전 544년 ~ 기원전 541년
27 영왕(靈王) 건(虔) 기원전 540년 ~ 기원전 529년
28 자오(訾敖) 비(比)
기원전 529년
29 평왕(平王) 거(居) 기원전 528년 ~ 기원전 516년
30 소왕(昭王) 임(壬) 기원전 515년 ~ 기원전 489년
31 혜왕(惠王) 장(章) 기원전 488년 ~ 기원전 432년
32 간왕(簡王) 중(中) 기원전 431년 ~ 기원전 408년
33 성왕(聲王) 당(當) 기원전 407년 ~ 기원전 402년
34 도왕(悼王) 의(疑) 기원전 401년 ~ 기원전 381년
35 숙왕(肅王) 장(臧) 기원전 380년 ~ 기원전 370년
36 선왕(宣王) 양부(良夫) 기원전 369년 ~ 기원전 340년
37 위왕(威王) 상(商) 기원전 339년 ~ 기원전 329년
38 회왕(懷王) 괴(槐) 기원전 328년 ~ 기원전 299년
39 경양왕(頃襄王) 횡(橫) 기원전 298년 ~ 기원전 263년
40 고열왕(考烈王) 원(元) 기원전 262년 ~ 기원전 238년
41 유왕(幽王) 한(悍) 기원전 237년 ~ 기원전 228년
42 애왕(哀王) 유(猶) 기원전 228년 ~ 기원전 228년
43 부추(負芻) 기원전 227년 ~ 기원전 223년

주석[편집]

  1. 초 나라의 첫 번째 도읍지로써 지금의 후베이성(중국어: 湖北省, 병음: Húběi Shěng) 자귀현(秭歸縣) 동남쪽의 고을로써 장강의 강안(江岸) 도시로 쓰촨성(중국어: 四川省, 병음: Sìchuān Shěng)과 경계(境界)에 있음.
  2. 지금의 후베이성(중국어: 湖北省, 병음: Húběi Shěng) 죽산현(竹山縣) 서남쪽에 있었던 제후국
  3. 양우(楊雩)혹은 양월(陽越)이라고도 한다. 지금의 후베이성(중국어: 湖北省, 병음: Húběi Shěng) 강릉현(江陵縣) 일대
  4. 지금의 후베이성(중국어: 湖北省, 병음: Húběi Shěng) 악성현(鄂城縣) 부근
  5. 지금의 후베이성(중국어: 湖北省, 병음: Húběi Shěng)을 가로 지르는 한수(漢水)의 하류 지방을 말한다.
  6. 송나라 영지로써 지금의 하남성 수현(睢縣) 서북
  7. 초 나라와 동성인 제후국으로 호북성 자귀현(秭歸縣) 동남에 있었던 군소 제후국
  8. 성복대전(城濮大戰)/기원전 636년 중원제후국을 대표하는 당진과 남쪽의 새로이 일어난 세력을 대표하는 초 나라가 지금의 산동성 견성현(鄄城縣) 서남 임복향(臨濮鄕)에 있었던 성복이라는 곳에서 벌어진 전투. 이 싸움의 결과 진 문공(晉 文公)의 당진군이 초군을 대파하여 초 나라의 중원진출에 쐐기를 박고 향후 중원의 패권은 당진이 차지하게 되었다.

관련 항목[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