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양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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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양공(宋襄公, ? ~ 기원전 637년, 재위: 기원전 651년 ~ 기원전 637년)은 중국 춘추시대 송나라의 공작. (子), 자보(茲父), 시호양공. 환공의 아들. 춘추 오패의 한 명으로 해당될도 있다.

즉위[편집]

기원전 651년에 송나라 공의 자리에 오른다. 양공은 목이(目夷)라고 하는 이복형이 있었고 양 공은 왕위를 목이에 양보하려고 했지만, 목이는 거절하고 송나라 공이 된 뒤에 목이를 재상에 임명하였다.

즉위 직 후, 제나라환공이 주최하는 회맹(會盟)에 참가하고, 그 후도 종종 회맹에 참가했다. 양공은 사사로운 일보다 예를 중시하는 이상주의자였다.

기원전 643년에 환공이 사망하였다. 제나라 국내에서는 후계를 둘러싸 내란 상태가 되었다. 이것에 대해서 양공은 회맹을 열어 조나라(曹),위나라(衛),주나라(邾)등 소국들을 거느려 일찍이 송에 망명해 왔던 태자 소(昭)를 제나라로 보내고, 제나라의 내란을 진압하여 소를 제나라 임금이 되게 하였다. 이 사람이 효공이다. 또 회맹에 오지 않았던등나라선공(滕 宣公)을 잡고 뒤이어 늦게 온 증나라 임금을 삶아 죽여 제물로 바쳤다.

기원전 639년, 제나라, 초나라와 회맹 하여, 맹주가 되는 것을 초나라에게 인정되었다. 이전에 목이는 송나라가 맹주가 되는 것은 해롭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충고하고 있었지만 양공은 듣지 않았다. 더욱 양공은 초나라, 진나라, 채나라, 허나라, 조나라를 모아 회맹을 실시하지만, 이 자리에서 초나라에 의해 감금되어 맹주로서의 면목이 손상된다.

다음 해, 양공은 굴욕을 풀기 위해 위나라, 허나라, 등나라 등을 거느려 초나라의 맹하에 있던 정나라를 공격한다. 이것에 즈음하여도 목이는 충고했지만 양공은 듣지 않았다. 초 성왕은 군을 일으켜 정나라를 구원하러 향했고, 양군은 송나라 내의 홍수(泓水)의 논두렁에서 싸우게 된다.

홍수 전투[편집]

초나라군은 송나라군에 비해 압도적 대군이었다. 거기서 적이 도하하고 있는 동안에 공격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양공은 이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초나라군은 도하를 다 했지만, 아직도 전투 대형이 갖추어지지 않았었다. 목이는 다시 여기서 공격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양공은 이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마침내 초군은 전투 대형을 정돈해 양군은 격돌했지만, 당연히 대군의 초나라의 압승에 끝나, 양공은 넓적다리에 상처를 입었다.

돌아온 다음에 왜 그 때에 공격하지 않았던 것이냐고 추궁받고 양공은 "군자는 사람이 곤궁하고 있을 때에 나는 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대답하였고 목이는 이것을 듣고 기가 막혔고 "전쟁때는 보통 때의 당연하다고는 다르다"라고 했다.

그 다음에, 의 망명 공자인 중이(重耳, 후의 문공)이 송나라를 방문했다. 양공은 이것을 많이 환대 하였고, 마차 20승을 보냈다.

기원전 637년, 홍수 전투에서 받은 넓적다리의 상처에 의해 사망하였다.

선대
아버지 송 환공 어열
제20대 송나라 공작(송공)
기원전 651년 ~ 기원전 637년
후대
아들 송 성공 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