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 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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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혜왕
주나라의 제17대 왕
본명 희랑 (姬閬)
재위 기원전 676년 ~ 기원전 675년
기원전 673년 ~ 기원전 652년
부왕 주 희왕
이전 왕 주 희왕
다음 왕 주 양왕

동주 혜왕 희랑(東周 惠王 姬閬, ? ~ 기원전 652년)은 주나라의 17대 왕이다.

생애[편집]

희왕 5년(기원전 677년)에 아버지인 희왕이 사망하였다.

혜왕 원년(기원전 676년)에 즉위했다. 할아버지 주 장왕의 애첩 왕요의 아들로 장왕에게 사랑을 받은 작은아버지 자퇴(子頹)의 일파를 탄압하여, 자퇴의 스승 위국 등 대신들의 장원을 빼앗아 유(짐승을 기르는 곳)로 만들었다. 또 대부 자금(子禽), 변백(邊伯), 축궤(祝跪), 첨보(詹父)의 재산을 침해했다. 이듬해인 기원전 675년 가을, 위의 다섯 대부와 사(士) 석속이 소자에 의지하고 자퇴를 옹립해 반란을 일으켰다. 혜왕측이 한 번은 반란군을 소자의 영읍인 온으로 쫓아냈으나, 두 나라가 자퇴를 지원해 혜왕이 쫓겨났다. 혜왕은 온(현재의 허난 성 원 현 남부)으로 피했고 여공은 자신이 13년간 망명할 때의 근거지인 역(현재의 위저우 시)에서 혜왕을 맞이했다. 자퇴는 겨울에 주왕으로 등극했다.[1][2]

혜왕 4년(기원전 673년), 정은 과 협력해 자퇴와 그 일당 다섯 대부를 죽이고 혜왕을 복위시켰다. 혜왕은 정에는 은상으로서 호뢰(현재의 허난 성 싱양 시) 동쪽의 땅을 하사했으며, 괵을 순수하고 주천 이북 땅을 주었다. 혜왕은 괵공에게 정여공보다 더 좋은 하사품을 주었고, 이는 주나라와 정나라 사이가 벌어져, 나중에 주 양왕정 문공 사이에서 분쟁이 일어나는 원인이 되었다.[3]

혜왕 10년(기원전 667년), 혜왕은 환공에게 패자(방백)의 지위를 하사했다.

혜왕 25년(기원전 652년), 혜왕은 사망하였다.

후계[편집]

혜왕 자신이 장자인 제 아버지보다 첩복인 자퇴를 더 사랑한 할아버지 주 장왕 때문에 왕위에서 쫓겨나는 고초를 겪었음에도, 후처 혜후의 아들 숙대를 사랑해 장자 정(주 양왕)의 위치를 불안정하게 했다.[1] 혜왕은 태자를 폐하고 숙대를 태자로 세우려 했으나, 패자인 제 환공은 이를 저지하고자 혜왕 22년(기원전 655년) 회맹에서 왕세자 정을 불러들여 제후들과 회견하여 태자 지위를 널리 안정시키고자 했다. 혜왕은 제 환공에게 드러내놓고 반대하지는 못하고, 회맹의 일원으로 참가한 정나라를 꾀어 이탈시키고 초나라 · 진나라와 손을 잡고자 했다. 정 문공은 왕명을 따라 회맹을 배반했다. 혜왕 23년(기원전 654년) 제 환공이 주도하는 제후연합군의 정나라 공격은 초나라가 허나라를 공격해 무산되었으나, 헤왕 24년(기원전 653년) 재차 공격을 받은 정나라가 제 환공에게 굴복하면서 혜왕의 공작도 무위로 돌아갔다.[4]

주석[편집]

  1. 사마천: 《사기》 권4 주본기
  2. 정태현: 《역주 춘추좌씨전》 권1, 419쪽
  3. 위와 같음, 422 ~ 423쪽
  4. 위와 같음, 권2, 39 ~ 6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