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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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행정 구역
시도급
특별시(特別市)*
광역시(廣域市)*
특별자치시(特別自治市)*
(道)*(특별자치도(特別自治道)*)
시군구급
(市)**(특정시(特定市)**, 행정시(行政市))
(郡)**
자치구(自治區)**
일반구(一般區)
읍면동급
(邑)
(面)
(洞)(행정동(行政洞))
(路)
(街)
통리급
통(統)
(里)
반급
반(班)
지번
번지(番地)
*: 광역자치단체 **: 기초자치단체

v  d  e  h

(郡)은 행정 구역의 하나이다.

한국[편집]

한국의 경우 위만조선의 붕괴된 뒤 한무제가 설치했다는 한사군에서 유래를 찾는데 하나의 군이 지금의 (道)정도로 낙랑군은 밑에 25개의 (縣)을 관할하였다고 한다.

한국에서 군현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것은 역시 고구려, 백제, 신라 세개의 나라에 의해서였다. 각 3국이 영토가 넓어지고 중앙정부의 권력이 지방으로 뻗치면서부터 중국의 군현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어 운영되기 시작했는데, 각국이 정복하여 세력권에 편입시킨 부족(部族)들의 땅에 성을 쌓고 행정의 중심으로 삼기 시작했고 그것이 나중의 군郡이 되었다는 것이다. 성이 중심이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군의 장관을 대개 성주(城主)라고 불렀고 각 나라별로 처려근지(處閭近支) 또는 도사(道使)나 태수(太守)라고 불렀다.[1]

757년 전국적으로 행정구획이 개편되었다. 9주 밑에 117개의 군, 그 밑에 293개의 현으로 이루어진 행정체계였다. 이는 신라말까지 이어졌지만 신라말의 혼란으로 행정체계가 무너지면서 전국의 군현이 호족들에 의한 반독립적인 자치체제로 이행되었고, 그 상태는 고려시대인 983년 성종2년에 전국에 12을 설치하고 본격적으로 지방관을 파견,상주시키기 시작할 때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는 속군과 속현이 많았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전국의 모든 군현에 지방관이 파견되면서 속군과 속현은 없어졌고, 군은 (府)와 아래에 속하게 되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군은 전국적으로 82개가 있었고 종 4품의 외관직군수가 다스리게 되어 있었다.

1895년 고종 32년 을미개혁 당시에 전국을 23부로 나누면서 기존의 등이 폐지되었고, 전국의 행정단위가 일괄 군으로 편제되었다. 현재의 군 체제로 정비된 것은 1914년의 일제에 의한 지방행전개편 이후이다.

대한민국[편집]

대한민국에서는 군은 광역시의 하부 행정 구역이다. 도시의 형태를 갖추고 (시가지를 구성하는 지역안에 거주하는 인구의 비율이 전체 인구의 60% 이상이며 상업·공업 기타 도시적 산업에 종사하는 가구의 비율이 전체가구의 60% 이상.) 인구가 5만 명 이상이 되거나 국가의 정책으로 인하여 도시가 형성되고, 도의 출장소가 설치된 지역으로서 인구 3만 명 이상일 경우 자치시로 승격될 수 있다. 위의 조건에는 못 미치지만 설치된 시와 군을 통합한 지역, 인구 5만 이상의 도시 형태를 갖춘 군, 인구 2만 이상의 도시 형태를 갖춘 2개 이상의 지역의 인구의 합이 5만 명 이상이고 군 전체의 인구가 15만 명 이상인 군이 되어도 시로 승격될 수 있다. 하부 행정 구역으로는 ·이 있다. 2012년 현재 읍의 개수가 가장 많은 군은 읍이 4개인 강원도 정선군철원군, 울산광역시 울주군(과거에는 읍이 6개였던 고양군이었다.)이다. 최근 군에서 시로 승격된 지역은 2013년 9월 23일에 시 승격된 여주시이다. 인구가 가장 적은 군은 울릉군으로 인구가 10000명 정도밖에 안 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편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군은 평양시와 도의 하위 행정구역이며 군마다 반드시 읍과 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로동자구는 필수가 아니나 로동지역에서 리와 읍의 행정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할 때마다 설치한다. 각 군마다 읍이 있으며 (읍의 이름은 군의 이름과 같다.) 읍에는 인민위원회, 조선로동당 군 위원회, 군 인민회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일본[편집]

일본에서는 고대 율령제를 시행하면서 구니의 하위 행정구역으로 군을 설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일본에서 군은 그 위치와 역할이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다. 에도 시대에도 막부와 각 은 군을 지방 통치의 단위로서 이용했다. 메이지 유신 후 한동안 군은 지리적인 경계로만 설정되었으나, 1878년 행정구역으로서 설정되었고, 1890년 군제가 공포되어 도도부현(町)·(村) 사이의 중간계층의 지방자치단체로 설정되었고, 군의회도 편성되었다. 1921년 군제 폐지법이 공포되어 1923년 군의회가 폐지되고, 1926년 군수와 군관공서도 폐지되어 군은 다시 지리적인 경계를 나타내는 것으로만 쓰이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1947년 공포된 새로운 지방자치법에서도 군은 (町)이나 (村)을 아래에 두지만, 군청이나 군의회도 두지 않는 명목상의 존재로 하였고, 이러한 상태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이나 촌이 (市)가 되면 군과 분리된다. 군의 설정·합병·폐지는 도도부현 지사의 권한으로 도도부현 의회의 의결을 거쳐 중앙에 신고하면 된다. 행정구역 통폐합과 농촌 인구 감소 등으로 정과 촌의 통합이 많이 이루어지면서 군의 수도 많이 줄어들었다. 현재의 군은 주소 표기에 사용되는 정도의 명목상의 존재이며, 도도부현 의회 선거구 설정이나 광역 연합체(광역 행정권)의 범위 설정 등에 기준이 되기도 한다.

중국[편집]

군의 연원은 진나라군현제(郡縣制) 이전부터 볼 수 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부터 과 함께 새로 정복한 지역을 통제할 목적으로 설치된 군관구의 성격이 짙은 기관으로 당초에는 그리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못했지만 나중에 각 나라 간의 전쟁이 격화되면서 지방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직할지화할 목적으로 전국적으로 세워졌다.

처음에 군과 현은 상하관계가 없었다. 그러나 군의 경우는 대개 변경지역의 넓은 지역을 관할하고 그 안에 몇 개씩 현이 세워지면서 현과 상하관계가 생기기 시작했다.

군이 본격적인 행정기관으로 활성화 된 것은 진나라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하고 전국을 36군으로 구획하면서 군현제를 본격적으로 시행하면서부터이다.[2]

미국[편집]

함께 보기[편집]

주석[편집]

  1. 이기백(1976)韓國史 新論
  2. 네이버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