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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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명치유신, 일본어: 明治維新 메이지 이신[*])은 일본에서 에도 막부를 무너뜨리고 천황이 직접 통치하는 체제로 전환된 사건이며, 근대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된 개혁을 말한다. 일본의 정치, 사회 구조를 크게 바꾼 일련의 사건들이다. 미 해군의 제독 매슈 페리가 이끌고 온 흑선(일본어: 黑船 구로후네[*])에 대한 일본의 직접적인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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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배경
19세기 일본은 영토확장을 진행상중이던 미국의 개항 요구로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결국 미·일 수호 통상조약(1858년)을 체결하게 되었다. 막부와 천황파는 대립하게 되었다. 그 후 왕정복고 세력과 개항압력에 대해 마땅한 대책을 세우지 못할 정도로 무능한 막부 타도 세력 등이 결합하여 막부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
[편집] 동맹과 충성
1866년 사쓰마 번의 지도자 사이고 다카모리와 조슈 번의 기도 다카요시 사이의 사쓰마-초슈 동맹으로 메이지 유신이 이뤄졌다. 이 두 지도자는 고메이 천황을 지지하였다. 이들은 사카모토 료마에 의해 천거되었는데 도쿠가와 쇼군의 지배에 도전하여 일왕의 권력을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1867년 고메이 천황이 세상을 떠나자 메이지 천황이 뒤를 이었다.
[편집] 개혁의 내용
메이지 유신은 중앙관제/법제/신분제/경제/지방행정/산업/교육/종교/외교 제도 등이 개편된 사건이다.
메이지 유신은 선진자본주의 열강이 제국주의로 이행하기 전야인 18세기 후반의 시점에서 일본 자본주의 형성의 기점이 된 과정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 시기는 대체로 1853년에서 1877년 전후로 잡고 있다. 1853년 미국의 동인도함대 사령관 M.C.페리 제독이 필모어 미국 대통령의 개국(開國) 요구 국서(國書)를 가지고 일본에 왔다. 이때 유신의 싹이 텄고, 1854년 미 ·일 화친조약에 이어 1858년에는 미국을 비롯하여 영국 ·러시아 ·네덜란드 ·프랑스와 통상조약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이 조약은 칙허 없이 처리한 막부(幕府)의 독단적 처사였으므로, 이에 반발한 반막부세력(反幕府勢力)이 일어나 막부와 대립하는 정치적인 격동을 겪었다. 그러다가 300여 년이나 내려오던 막부가 1866년 패배하였고, 1867년에는 대정봉환(大政奉還) ·왕정복고가 이루어졌다. 메이지 정부는 학제 ·징병령 ·지조개정(地租改正) 등 일련의 개혁을 추진하고, 부국강병의 기치하에 구미(歐美) 근대국가를 모델로 하여, 국민의 실정을 고려하지 않는 관 주도(官 主導)의 일방적 자본주의 육성과 군사적 강화에 노력하여 새 시대를 열었다.
이 유신으로 일본의 근대적 통일국가가 형성되었다.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가 성립하였고, 정치적으로는 입헌군주제가 개시되었으며, 사회 ·문화적으로는 근대화가 추진되었다. 또, 국제적으로는 제국주의 국가가 되어 천황제적 절대주의를 국가구조의 전분야에 실현시키게 되었다. 유신을 이룩한 일본은 구미에 대한 굴종적 태도와는 달리 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해서는 강압적 ·침략적 태도로 나왔다. 1894년의 청일전쟁 도발, 1904년의 러일전쟁의 도발은 그 대표적인 예이며, 그 다음 단계가 무력으로 대한제국을 병합한 것이다.
이러한 군국주의는 1937년에는 중일전쟁을 유발하였고, 1941년에는 미국의 진주만(眞珠灣)을 공격함으로써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독일 이탈리아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하였다. 그 결과 1945년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에 사상(史上) 최초의 원자폭탄(原子爆彈)이 투하되는 비극을 자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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