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카 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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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카 개신(大化改新)은 일본 아스카 시대 고교쿠 천황 재임 중인 646년에 일어난 정치 개혁 운동이다.

쇼토쿠 태자가 죽은 후 소가 씨 일족이 실권을 장악한 것에 불만을 가진 나카노오에(中大兄) 황자(훗날의 덴지 천황)는 후지와라노 가마타리(藤原鎌足) 등과 함께 쿠데타로 신정부를 조직하여, 연호를 다이카(大化)라 정한 후 씨성제도(氏姓制度)를 부정하는 새로운 국가체제를 건설하는 정치개혁에 착수하였다. 이 때 수도를 아스카에서 나니와(현재의 오사카 시 주오 구)으로 옮겨 정치의 중심을 호족에서 천황으로 바꾼 전환점을 마련하게 된다.

이 개혁은 쇼토쿠(聖德) 태자의 정책을 계승한 정치 변혁이기는 하나 당제(唐制)를 모방한 것으로, 중앙집권적·관료제적인 정치기구로써 국가권력을 최고도로 집중, 발휘하려 한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전문 [편집]

고교쿠 천황 2년 춘정월 초하루 신년 축하의 예가 끝나고 개신의 조칙을 선포하였다.

  • 옛날 천황이 황실에서 사적으로 소유하기 위해 설정한 백성과 곳곳의 황실 직할령, 여러 호족이 사적으로 소유하는 부곡(部曲)의 백성과 곳곳의 사유지를 폐지한다. 대부 이상 관리에게 각기 일정한 수의 민호를 지정해 그로부터 거준 조세를 준다. 그 이하 관인과 백성에게는 베와 비단을 지위에 따라 지급한다. 무릇 대부는 백성을 다스리는 자이다. 잘 다스리면 백성은 그를 신뢰한다. 녹봉을 많이 두는 것은 백성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 처음으로 도성의 제도를 만들고, 기나이(畿內), 고쿠시, 군시, 각 고을에서 호장의 사무를 보는 관청, 방어 시설, 척후병, 변경을 방어하는 병사, 역마, 전마(傳馬)를 두고, 그 말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증명서를 지급하며, 지방 행정구역을 설정한다. 무릇 수도에는 고을마다 장(長) 1인을 두고, 네 고을마다 방령(坊令) 1인을 둔다. 방령은 해당 고을 사람 중에서 사람됨이 바르고 사무에 능한 사람을 골라 쓴다.
  • 처음으로 호적, 호구 대장을 만들고 나라에서 백성에게 논밭을 나누어주는 법을 만든다. 50호를 1리로 하고 장(長) 1인을 둔다. 이장은 마을 안의 호구를 조사하고, 농경과 양잠을 권하며, 법을 위반하는 자를 단속하고, 부역에 고을 사람을 징발하는 것을 관장한다.
  • 예로부터 내려오는 부역제도를 폐지하고, 논밭은 기준으로 하여 각 고을의 특산물을 바치게 하는 제도롤 시행한다. 비단, 명주, 무명 등은 각각 그 고장의 사정에 따라 골라내게 한다. 또 이것과는 별도로 호별로 특산물을 바치게 한다. [1]

참조 [편집]

  1. 일본서기(日本書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