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쿠 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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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쿠 천황
Empress Kogyoku-Saimei.jpg
일본의 제35대 천황
재위 642년 ~ 645년 , 655년 ~ 661년
부황 지누 왕
이전 천황 조메이 천황
다음 천황 고토쿠 천황

고교쿠 천황 (일본어: 皇極天皇, 황극 천황, 594년 ~ 661년 8월 24일)은 사이메이 천황 (일본어: 斉明天皇, 제명 천황)과 동일인물이며 일본의 35대(재위: 642년 1월 15일 ~ 645년 7월 12일)와 37대(재위: 655년 2월 14일 ~ 661년 8월 24일) 천황이다.

약력[편집]

그녀는 일본 역사상 두 번째 여자 천황이었다. 그녀 이외에도 7명의 여성 천황이 있었지만 그들의 계승자들은 황족의 남성중에서 선택되었다. 그것이 보수적인 학자들이 여자의 치세가 임시적이였다고 주장하는 근거이다. 겐메이 천황의 뒤를 딸 겐쇼 천황이 계승한 것이 이러한 주장의 유일한 예외이다.

그녀가 천황에 오르기 전의 개인이름은 아메 도요타카라 이카시히 다라시히메 였다. 그녀는 비다쓰 천황의 증손녀이자 조메이 천황의 황후(배우자)였다. 그들은 세 아이를 두었는데 나카노오에 황자(덴지 천황), 오아마 황자(덴무 천황) 그리고 하시히토 황녀(고토쿠 천황의 황후)가 그들이다.

그녀의 첫 재위기간은 4년으로, 소가 씨가 권력을 잡고 있었다. 아들 나카노오에 황자가 그녀의 왕좌 앞에서 소가노 이루카를 처형한 것에 충격을 받아 양위하였다. 그녀의 뒤를 이은 고토쿠 천황이 죽었지만, 황태자인 나카노오에(덴지 천황)가 어머니를 사이메이 천황이라는 이름[1]으로 다시 즉위시키고 자신은 황태자로 남아 정치를 이끌었다. 그녀의 두 번째 치세기간 중 한반도의 백제가 멸망하였다.

661년 사이메이는 혼슈 야마토 지방의 수도에서 육해군을 이끌고 출발하여 세토 내해를 가로질러서 서진하였다. 천황은 이요 지방의 이시유 임시궁에서 머물렀는데 오늘날의 도고 온센이다. 5월 그녀는 규슈 쓰쿠시 지방의 북부에 위치한 아사쿠라 궁에 도달하였는데 그곳은 현재 후쿠오카 현이다. 일본-백제부흥세력 연합군은 신라와의 전쟁을 준비하였으나 661년 7월 그녀가 아사쿠라 궁에서 사망하였다. 그녀의 장례식은 11월 나니와 주(오사카)로 옮겨져 치러졌다. 그녀가 사망하고 한반도로 파병한 병력은 백제 부흥 세력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했으며 신라군에게 몰살에 가까운 참패를 당함으로 인하여 결국 백제의 멸망을 막지 못했다.

관련 작품[편집]

드라마[편집]

참고 하기[편집]

주석[편집]

  1. 백제 구원의 여신, 사이메이 천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