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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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日本人, 일본어: にほんじん 니혼진[*]·にっぽんじん 닛폰진[*])은 일본 열도에 사는 야마토 민족, 류큐 민족, 아이누 민족, 윌타 민족, 니브히 민족 등을 총칭한다. 일본 법률상 공식 공용어는 결정되어 있지 않지만, 사실상 대부분이 야마토 민족의 일본어를 사용하며, 류큐인과 아이누인을 제외하면 대체로 북방 몽골로이드 형태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몇 개 분류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 국가적 분류:일본 국적을 가지는 사람. 일본 국민.
  • 민족적 분류:일본 열도에 토착의 주요 민족인 일본 민족의 문화, 언어(일본어), 역사 등을 공유해, 같은 황색인종의 혈통(인종)을 가지는 사람들.

미국과 같은 다민족국가와 달리, 일본에서는 국적적 의미의 일본인과 민족적 의미의 일본인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현재 일본국적 수여자인 류큐민족아이누 민족들도 존재하기 때문에 일본은 엄밀하게 말해 다민족국가이다.

일본인의 기원[편집]

일본인의 기원은 남해에서 온 오스트로네시아어족과 중국의 장강 하류 지역에서 온 이래 조엽수림 문화를 일본에 전래한 민족 등 여러 민족의 이주가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중국대륙과 한반도에서 살던 민족이 일본 열도에 이주했기 때문에 일본 열도 원주민들과 같이 지낸 것으로 추정된다. 한반도를 거쳐 일본열도로 이어진 민족이동의 경로는 지리적 조건에 따라 크게 3가지 경로로 볼 수 있다. 첫째는 한반도 서부지역에서 북 규슈 서부로 들어가는 것, 둘째는 남해안을 지나 북 규슈 동부로 들어가는 것, 그리고 셋째로 동해안을 지나 동해에 면한 이즈모 지역으로 건너간 것이다. 가령 규슈 서부의 구마모토(熊本)는 3세기에 구노국(狗奴国), 4~5세기에 에다후나야마 고분을 남긴 백제 분국(分國)이었다. 북 규슈 중․동부는 야마타이코쿠(邪馬台国, 3세기)와 이와이(磐井, 5세기) 등 주로 가야계가 분포되었다. [1]

일본인의 민족구성[편집]

일본내에서 생활하거나 혹은 일본국적을 보유하면서도 일본 고유의 민족 의식과는 다른 민족적 자각을 계속 가지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내에 있으면서도 이른바 현대일본인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야마토민족과는 다른 민족적 자각을 가지며 살고 있는 민족들이다.

성씨와 이름[편집]

일본인의 성명은 성씨와 이름으로 구성된다.일본 본토거주인의 경우, 미들네임의 개념은 없다. 동양인 성씨와 비슷한 개념으로 일본에는 묘지(苗字/名字, みょうじ)가 있다. 성(姓)과 씨(氏),자(字) 등은 엄밀하게는 모두 별개의 개념인데, 오늘날에는 그 엄격한 구분이 일반인에게는 사라졌다. 성과 이름을 함께 가리킬때는 동양인과 동일하게 씨명(氏名)이라는 표현을 쓴다. 성이 먼저 이름이 나중인 순서는 한자문화권 국가에 공통적인데, 또한 성명을 한자로 표기하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반면, 일부는 표기에 한자를 쓰되 읽는 법은 일본 고유어로 읽는 등의 다른 국가들과 이질적인 특징도 존재한다. 정확한 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일본의 성은 그 수가 대단히 많은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생활양식[편집]

주거[편집]

다타미

일본 전통 가옥의 마루 위에 까는 것으로, 짚을 심으로 삼아 만든 돗자리와 같은 직사각형의 매트리스이다. 크기는 대개 약90cm×180cm의 장방형으로, 현재까지도 6疊(첩:じょう:다다미를 세는 단위), 8疊, 10疊, 12疊 등으로 방의 넓이를 다타미의 개수로 세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 온돌이 있다면 일본에는 다타미가 있다. 다타미는 일본 주거문화생활의 가장 큰 특징이자 우리와의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이 다타미 문화가 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로는 우선 다타미가 습기나 냉기 조절에 아주 뛰어나기 때문이다. 다타미는 습기가 많은 여름철이면 습기를 빨아들이고 겨울철에는 방바닥이 차가워지는 것을 막아준다. 여름에는 돗자리, 겨울에는 카펫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무릎을 꿇고 앉는 것이 일반적인 일본인들의 생활 습관으로 볼 때도 다타미가 쿠션의 역할을 하면서 저리기 쉬운 다리를 보호해 주기도 한다. たたみ(다타미)는 유까라고 하는 나무로 된 바닥에 접을 수 있는 깔개를 깔았던 것에서 유래하며 접는다 (たたむ) 는 뜻에서 파생되었다.

도코노마

도코노마는 그림이나 꽃꽂이를 감상하기 위해 객실 다타미방에 설치되어 있고, 방바닥의 일부분을 한층 높여 만든 곳으로 벽에는 족자를 걸고, 바닥에 도자기나 꽃꽂이 등을 장식해 둔 공간을 말한다. 방바닥을 약간 높여 벽에 족자를 걸고, 그 앞에 화병이나 장식품을 올려 두었다. 기원을 살펴보면 무로마치 시대 일본의 전통 예술인 다도, 꽃꽂이, 노, 하이샤 등의 양식이 확립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다도에서는 도코노마를 손님을 맞이하는 곳으로 이용하면서 그 실내 장식도 엄밀히 제한하였다. 즉, 도코노마는 전통적인 분위기로 문학적인 의미를 지녀야만 했으며, 서로 관련되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공간을 연출하고 성스러우며 상징적인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강조했다.

후스마

나무로 만든 얼개 양쪽에 종이나 헝겊을 발라서 만든 것으로 실내를 몇 개의 방으로 나누도록 만든 미닫이문입니다.

음식[편집]

샤부샤부

냄비요리 중에서도 한국 사람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음식이다. 얇게 썬 쇠고기와 적당한 크기로 썬 두부, 배추, 쑥갓, 파, 우엉, 다시마, 곤약 등을 전골 냄비의 끓는 물에 살짝 데치듯이 익혀 내어, 개인 접시에 담아 양념 소스에 적셔 먹는 음식이다. 이 때 얇게 썬 고기를 국물에 넣을 때 첨벙 첨벙(しゃぶしゃぶ)라고 들린다고 해서 샤부샤부라고 붙여진 것이다.

스키야키

농기구인 가래(すき)의 쇠 부분 위에다 고기를 구워먹었던 것이 스키야키(すきやき)의 어원이다. 얇게 썬 쇠고기와 적당한 크기로 썬 두부, 배추, 쑥갓, 파, 우엉, 다시마, 곤약 등을 철로 된 냄비에 넣고, 조미료, 설탕, 소금 등으로 조미하여 살짝 익힌 후에 날계란(간장을 가미하기도 함)을 푼 개인 접시에 덜어 뜨거울 때 먹는 음식이다. 우리나라의 전골과 비슷한 음식이다

낫토

콩을 발효시켜 만든 끈적끈적한 가공식품으로 청국장과 비슷한 독특한 냄새를 풍긴다. 일본 사람들 사이에도 서쪽 지방에서는 즐겨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 보존 식품의 하나로 용기에 포장하여 판매하고 있으며 아침밥과 함께 먹는 일본의 대표적 전통 식품이다. 냄새가 나서 먹지 않는 사람도 많지만 최근에는 낫토 카레라이스, 낫토 스파게티, 낫토 계란말이, 낫토 스시 등 낫토를 이용한 요리가 많이 나오고 있다. 스시의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면 동남 아시아 산지에 사는 사람이 민물고기의 보존용으로 생각해내 쌀, 좁쌀 등의 곡물에 곁들인 것이 시초라고 하는데, 2천년전부터 이것이 중국 대륙에 전해지고 이것이 일본에 건너간 것이라 한다. 즉, 태국이나 라오스, 캄보디아 등 동남아 내륙지방에서 민물고기 저장법으로 발달해 퍼져 나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의상[편집]

일본의상의 최초의 형태는 관두의로 목부분에 구멍이 있어 머리를 넣는 기모노였다. 후에 불편하다 하여 앞을 가로로 가르고 앞쪽으로도 입을 수 있도록 고안하였다. 그리고 옆선의 트인 부분은 맞물려 박고 소매를 붙이게 되었다.

현대 기모노의 기본형태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길이에 소매는 길고 넓으며 목부분이 V자로 패여있고 단추나 끈이 없이 왼쪽 옷자락으로 오른쪽 옷자락을 덮어 허리에 오비를 둘러 묶는다. 목적에 따라 옷감의 종류, 모양, 색깔, 입는 법 등이 다르고 기혼여성과 미혼여성, 또 정식방문인지 가벼운 외출인지에 따라서도 옷모양이 달라진다.

거주지역[편집]

대부분이 일본열도에 거주한다.

외국계 일본인[편집]

일본계 외국인[편집]

같이 보기[편집]

바깥 고리[편집]

주석[편집]

  1. 김용운 (2010). 《천황이 된 백제의 왕자들》. 한얼사, 45쪽. ISBN 978-89-89148 32-6 “한반도를 거쳐 일본열도로 이어진 민족이동의 경로는 지리적 조건에 따라 크게 3가지 경로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한반도 서부지역에서 북 규슈 서부로 들어가는 것, 둘째는 남해안을 지나 북 규슈 동부로 들어가는 것, 그리고 셋째로 동해안을 지나 동해에 면한 이즈모 지역으로 건너간 것입니다. 가령 규슈 서부의 구마모토(熊本)는 3세기에 구노국(狗奴國), 4~5세기에 에다후나야마(江田船山) 고분을 남긴 백제 분국(分國)이었습니다. 북 규슈 중․동부는 야마토(邪馬台, 3세기)국과 이와이(磐井, 5세기) 등 주로 가야계가 분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