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 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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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 군도
South Seas Island Mandate
南洋庁

1919년 ~ 1947년
일본 제국위임통치령
국기
국기
일본의 위치
수도 코로르
공용어 일본어(공식)
오스트로네시아어
정부 형태
천황
1919년 ~ 1926년

1926년 ~ 1947년

총독
1919년 ~ 1923년

1943년 ~ 1946년
위임통치령

다이쇼

쇼와


데즈카 도시로(첫번째)

호소가야 보시로(마지막)
약사
 • 베르사유 조약

 • 태평양 제도 신탁통치령
일본 제국
1919년 6월 28일


1947년 7월 18일
통화
오늘날
                                    팔라우 팔라우

                                    마셜 제도 마셜 제도
                                   미크로네시아 연방 미크로네시아 연방
                                    미국 미국

남양 군도(南洋群島, 일본어: 南洋群島 (なんようぐんとう) 난요군토[*], 영어: South Sea Islands)는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부터 태평양 전쟁 때까지 일본 제국의 지배 하에 있던 미크로네시아의 섬들을 말한다. 그 범위는 괌 섬(미국령)을 제외한 마리아나 제도, 팔라우 제도, 캐롤라인 제도, 마셜 제도였다. 이 섬들은 1899년부터(마셜 제도는 1885년부터) 독일 제국의 식민지였지만,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인 1919년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일본의 위임통치령(국제 연맹이 통치를 위탁한 지역)이 되었다.

1922년 일본은 팔라우코로르에 통치 기관인 남양청(南洋廳, 일본어: 南洋庁 (なんようちょう) 난요초[*], 영어: South Pacific Mandate)을 설치했다. 남양청은 행정 및 사법 업무를 관할하였고, 산업 개발 및 교육(특히 일본어 교육) 사업을 수행했다. 당시 이 지역의 주요 산업은 사탕수수 제당(製糖), 코프라(말린 코코넛), 수산물, 광업 등이었고, 대일(對日) 교역은 흑자였다. 이 때문에 많은 일본인이 이 시기에 이주하여 한 때는 일본인 인구가 현지 주민 인구(약 5만 명)를 웃돌기도 했다. 1933년, 일본은 국제 연맹에서 탈퇴했지만, 그 후에도 이 지역에 대한 통치는 인정되었다. 태평양 전쟁 말기, 남양 군도는 미일 전투의 격전지가 되었고, 북마리아나 제도는 일본을 향한 미군 폭격기의 출발기지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따라 이 지역은 미국의 신탁통치령이 되었다. 이 후, 미국의 속령인 과 자치령인 북마리아나 제도를 제외하고는 팔라우, 미크로네시아 연방, 마셜 제도로 각각 독립하였다.

한인 강제 동원[편집]

2010년 2월 25일, '일제 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당시 남양 군도에 강제동원된 한인 노무자는 5천명 이상이며, 주로 비행장 건설과 사탕수수 재배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이후에는 총알받이, 자살테러, 굶주림 등으로 징용자의 60%가 사망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환경이 좋은 곳에서 일할 수 있고, 10년 이상된 장기 이주자에게 농지를 준다'고 약속하였지만, 막상 현지에 도착한 조선인들은 턱없이 부족한 임금 수준과 조직적 통제의 대상이 되었으며, 마지막에는 자살테러를 강요받았다. 종전 후에도 상당수가 귀환하지 못했으며, 현지에서 생활고에 시달렸다. 고령으로 생존자 대다수도 사망하여 현재는 50여명이 현지에 거주 중에 있다.[1]

주석[편집]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