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천황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일본의 천황
天皇
Flag of the Japanese Emperor.svg
일본 천황기
현직:
아키히토

 1989년 1월 7일 취임
호칭 폐하(陛下)
관저 고쿄(皇居)
임기 종신제
초대 진무 천황 (전설)
성립 기원전 660년 2월 11일 (전설)
법정계승자 나루히토
웹사이트 궁내청 홈페이지 (일본어)
천황
일본어식 한자 표기: 天皇
현대 가나 표기: てんのう
역사적 가나 표기: てんわう
외래어 표기법 표기: 덴노
통용 표기: 텐노
한국어 한자 발음: 천황
헵번식 로마자 표기법: tennō

일본 천황(일본어: 天皇 (てんのう) 덴노[*])[1] 또는 일왕(日王), 일황(日皇)은[2][3][4] 일본 황실의 대표로, 주권을 가진 일본 국민의 총의에 기한 일본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며, 일정 부분의 외교 관계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지위에 있다.

지위로서 천황의 기능에 대해서는 일본국 헌법 제1조부터 제7조에 명시되어 있다.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고,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제1조)으로 규정되어 내각의 조언과 승인에 의해, 법률이나 조약의 공포, 국회가 지명한 내각총리대신의 임명, 국회의 소집 등의 국사행위로 제한된 권한(제7조)을 가진다.

일본에는 “비리법권천”(非理法權天)이라는 격언이 있는데, 이는 천황의 절대권을 의미한다. 일본 황실의 계보가 한 번도 끊어지지 않고 존속되었다고 주장하는 의미로 만세일계(萬世一系)라는 말이 있다. 일본 제국 때에는 세계의 만방이 모두 천황의 지배하에 있다는 팔굉일우(八紘一宇)라는 이념이 천황제 파시즘황국사관의 근본사상이 되었다. 한편 천황이 국가원수의 지위를 갖느냐와 관련하여서는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아서, 국가 원수라고 보는 견해와[5] 반대하는 견해가 대립된다. 현재는 제125대 천황인 아키히토가 황위에 있다.

역사[편집]

천황가(家)의 유래는 나라 시대(710년~794년)에 편찬된 《고지키》, 《니혼쇼키》 등의 역사서에 따르면 초대 진무 천황기원전 660년에 즉위했다고 추정된다. 이에 대해 여러 학설이 있으나, 주로 중국이나 한반도왕조와 비교하여 천황의 역사를 정당화하고자 후대에 연대를 올려 고쳤다는 설이 유력하다.

고대에는 오키미(大君)라 불렸다. 1192년 이후는 가마쿠라 막부미나모토노 요리토모세이이타이쇼군에 임명되면서 정치적 실권을 잃었다. 다만 쇼군 등의 관위는 형식상으로는 천황이 임명하는 것이었다. 근대 이전에는 연호가 국가적인 경조사 또는 재해에 의한 피해가 있을 때마다 바뀌어, 지금의 일세일원(一世一元)과는 달랐다.

제국 시대 (1868년 ~ 1945년) 에는 일본제국 헌법에는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통치한다.”라고 규정되었다. 1947년에 제정된 일본국 헌법부터는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고,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며, 이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 국민의 총의에 기한다”라고 규정되었다.

일본에서의 호칭[편집]

헤이안 시대 이전[편집]

'천황'이라는 칭호가 생기기 이전에 고대 야마토에서 수장이라는 뜻의 칭호를 국내에서는 「오오키미(大王)」(치천하대왕) 또는 천왕(天王)이라 불렀고, 대외적으로는 왜왕(倭王), 왜국왕(倭國王), 대왜왕(大倭王) 등으로 칭했다. 고대에는 스베라기(須米良伎), 스메라기(須賣良伎), 스메로기(須賣漏岐), 스메라미코토(須明樂美御德), 스메미마노미코토(皇御孫命) 등으로 불렸다.

'천황'이라는 칭호가 성립된 것은 7세기 후반의 일로 다이호 율령(大宝律令)에서 「천황(天皇)」이라는 칭호를 법제화하기 직전인 덴무 천황(天武天皇) 또는 지토 천황(持統天皇)의 시대의 일로 보는 것이 통설인데, 시기상 7세기 후반은 중국 (唐)의 고종(高宗)이 '천황'이라는 칭호를 사용한 직후의 일이기도 했다.[6] 태평양 전쟁 이전의 사학자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는 스이코 천황(推古天皇) 시대에 성립되었다는 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13세기 이후 「천황」이라는 칭호의 사용은 잠시 폐해지기도 했으나, 19세기 초에 다시 사용되기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일본 고대의 한자음 차자표기에서는 「덴와(てんわう)」로 표기된다. 「덴와(てんわう)」는 중세를 지나며 「덴노(てんのう)」로 변화되었다.

「천황」이라는 칭호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 고대 중국에서 북극성(北極星)을 신격화하여 가리키던 도교(道教)의 용어 「천황대제(天皇大帝)」 또는 「부상대제동황부(扶桑大帝東皇父)」에서 따왔다는 설.
  • 당 고종이 도교적 용어인 「천황」을 칭한 것을 일본에서도 수입해서 썼다는 설.
  • 5세기경에 대외적으로 「가외천왕(可畏天王)」, 「귀국천왕(貴國天王)」 등 단순히 「천왕(天王)」 등으로 불리던 것이 스이코조(또는 덴무조)에 「천황」이 되었다는 설.
「천황」이라는 단어와 관련된 말이 있는 오래된 기록들
문서 ・ 금석문 연대 발췌 출전 현대의 평가
견당사(遣隋使)의 국서 607년 日出處天子致書日沒處天子無恙 수서》(隋書)(636년 성립)
호류지 금당 약사여래상 광배명
(法隆寺金堂薬師如来像光背銘)
607년 池辺大宮治天下天皇 실제로는 607년보다는 조금 뒤인 하쿠호 시대(白鳳時代)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쇼토쿠 태자가 수에 보낸 국서 608년 天皇敬白西皇帝 일본서기》(日本書紀)(720년 성립) 《일본서기》 외에는 보이지 않는다.
호코지 장륙석가상 광배명
(法興寺丈六釈迦像光背銘)
609년 多知波奈土與比天皇 겐코지 가람연기(元興寺伽藍縁起) 및 유기자재장(流記資財帳)(746년 성립) 현재 유물 자체는 남아있지 않다.
천황기(天皇記) 620년 (제목 자체에 「천황」이 포함되어 있음) 일본서기 현재 전하지 않으며 《일본서기》 외에는 기록이 없다.
천수국수장(天寿国繍帳) 7세기 斯帰斯麻宮治天下天皇 悲哀嘆息白畏天皇前日啓 《상궁성덕법왕제설》(上宮聖徳法王帝説)(성립시기 불명) 천수국수장은 파손된 부분이 많고 발췌된 부분도 「皇前日啓」 등의 부분만 존재.
나머지 전문은 《법왕제설》에서 전하는 것이다. 성립연대를 두고 논쟁이 있다.
목간(木簡) 677년 天皇聚露忽謹 아스카노이케(飛鳥池) 유적 출토 「천황」이라 기록된 가장 오래된 문자 기록

천황이라는 칭호는 율령(律令)(「의제령儀制令」)에 규정이 있는데, 《양로율령》(養老律令) 천자조(天子条)에 따르면 제제사에서는 ‘천자’(天子), 조서에서는 ‘천황’, 대외적으로는 ‘황제’, 신하가 직접 주달할 때에는 ‘폐하’, 황태자 등 후계자에게 양위한 경우에는 ‘태상천황’(太上天皇), 외출시에는 ‘승여’(乘輿), 행행시에는 ‘거가’(車駕) 등으로 부르는 7개의 호칭이 정해져 있었지만, 이러한 표현은 표기시에만 사용할 뿐, 어떻게 쓰더라도 읽는 것은 당시의 풍속을 따라 ‘스메미마노미코토’(すめみまのみこと)나 ‘스메라미코토’(すめらみこと) 등으로 칭한다(특히 제사 지낼 때에는 「天子」라 쓰고 「스메미마노미코토」로 읽었다). 사망한 경우에는 ‘붕어’(崩御)라고 칭하며, 재위 중인 천황은 ‘금상천황’(今上天皇)이라고 부르며, 사망한 뒤에 시호가 정해질 때까지는 ‘대행천황’(大行天皇)으로 불린다. 배우자는 ‘황후’(皇后), 자칭은 ‘짐’(朕), 신하에게는 ‘지존’(至尊) 등으로도 불렸다. 또한 천황의 죽음은 붕어(崩御)라 했고, 재위중인 천황은 금상천황(今上天皇), 사망한 뒤 추시되는 시호가 정해질 때까지는 대행천황(大行天皇)이라 불렸다. 배우자는 「황후(皇后)」. 천황 자신이 칭할 때는 「짐(朕)」, 신하들로부터는 「지존(至尊)」이라 불렸는데, 모두 중국의 제도를 답습한 것이었다.

나라 시대(奈良時代)인 덴표호지(天平宝字) 6년에 진무 천황(神武天皇)부터 지토 천황까지의 41명의 천황 및 겐메이 천황(元明天皇) ・ 겐쇼 천황(元正天皇)에 대한 한풍(漢風) 시호가 오우미노 미후네(淡海三船)에 의해 일괄적으로 바쳐졌음이 《쇼쿠니혼키》(続日本紀)에 기술되어 있지만, 이것은 당대의 칭호와는 관계없는 시호일 뿐이다.

가마쿠라 막부에서 에도 막부까지[편집]

헤이안 시대부터 도쿠가와 시대까지는 ‘미카도’(御門, 帝)라거나 ‘긴리’(禁裏), ‘다이리’(内裏), ‘긴주’(禁中) 등의 여러 표현으로 칭해졌다. 미카도는 원래 어소(御所, 천황의 거처)에서 천황이 드나드는 문을 가리키며, 긴리·다이리·긴주는 그 어소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러한 표현은 천황을 직접 지칭하는 것을 피하기 위한 표현이다. 폐하도 마찬가지다. 또한 ‘주상’(主上, 오카미, 슈조)라는 표현도 이용되었다. ‘천조’(天朝, 덴초)는 일본의 왕조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조정이나 국가, 또는 천황을 가리킬 때도 사용되었다. ‘스메라미코토’, ‘스메로기’, ‘스베라키’ 등 또한 사용되었다. ‘황후’는 ‘중궁’(中宮)이라고도 불렸으며, 금상천황 또한 ‘당금의 제’(當今の帝, 도긴노미카도)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태상천황은 ‘상황’(上皇), ‘선동’(仙洞), ‘원’(院)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출가한 경우에는 ‘법황’(法皇)이라고도 불렸다. 태상천황은 고카쿠 천황닌코 천황에게 양위한 이후에는 사실상 사라진 표현이며, 제국 시대 이후에는 제도적으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황실전범이 퇴위에 대한 규정 없이, 천황의 붕어를 통해 황태자가 즉위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제국[편집]

일본제국 헌법에서 처음으로 천황의 호칭이 ‘천황’으로 통일되었다. 그러나 외교 문서 등에서는 ‘일본국 황제’가 많이 이용되었으며, 국내에서의 공문서에서도 종종 사용되었다. 표기는 통일되어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는 ‘천자님’(天子様)으로 불리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주 1] 육해군의 통수권을 가졌다는 의미에서 ‘대원수’라고도 불렸다.

현대 일본[편집]

일반적으로는 일본 내의 각종 보도 등에서 천황의 경칭은 황실전범에 규정된 ‘폐하’를 채용하여 ‘천황폐하’로 칭한다. 궁내청 등의 공문서에서는 다른 천황과의 혼동을 막기 위해 ‘금상폐하’로 칭하기도 한다. 3인칭으로 경칭없이 ‘지금 천황’(今の天皇)이나 ‘현재 천황’(現在の天皇), ‘금상 천황’(今上天皇) 등으로 불리는 경우도 있지만, 근래에는 완곡한 표현을 이용하는 것은 드물다.

세계에서의 호칭과 외교 관계[편집]

한국에서의 호칭[편집]

역사적으로 한국에서는 에도 막부까지는 천황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그러나 쇼군은 자신을 ‘일본 국왕’이 아니라 ‘일본국 상국’(日本國相國)으로 칭했으며, 조선 또한 국왕으로 부르지는 않았다. 1407년 이후에는 쇼군을 일본의 최고 실권자로 인식하고 국왕으로 호칭하였으며, 천황의 계보를 서술한 신숙주의 《해동제국기》와 같은 경우에는 쇼군을 국왕으로 호칭하고, 천황은 국정과 무관한 존재로 이름만 기록하고 있다.

임진왜란 직전인 1590년에 일본에 파견된 통신사의 부사였던 학봉 김성일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알현형식에 대한 논의에서 ‘관백’(關白)을 ‘위황(僞皇)의 정승’으로 칭하고, 천황을 일본의 최고 통치자로 인식하였다. 다만 일본의 입장에서 천황을 지칭할 때는 ‘천황’이라고 지칭하여 호칭을 다르게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는 조선 중기 이후에는 ‘천황’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여, 종교적·의례적인 존재로 파악하고, 자리만 있을 뿐 정사에는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쇼군에 대한 호칭도 관백으로 변화하였다.[7]

국립국어원표준국어대사전에는 ‘천황(天皇)’이 ‘일본에서 그 을 이르는 말’로 설명되어 있으며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출간된 《한국사》에는 ‘덴노’로 표기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천황’이라는 호칭을 인정하지 않으며 ‘일왕’(日王)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8] 종종 ‘일황’(日皇)이라는 말도 쓰이기도 하지만 거의 쓰이지 않는 편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낮추어 부르는 말로 ‘왜왕’(倭王)이라고도 한다.[9][10] 이같은 조치는 천황이라는 호칭이 굉장히 오만한 칭호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논리에 따른 것이다.[출처 필요] 그러나 일본 측은 일왕(日王) 또는 왜왕(倭王)등의 호칭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기타 나라와의 관계[편집]

현재의 아키히토 천황이 즉위한 이후에 다른 국가와 천황가 사이에 문제가 빚어진 사례는 없다. 다만 쇼와 천황의 경우나 이전의 경우에는 전범 등의 이유로 좋지 않은 관계를 보여, 네덜란드를 방문했을 때에는 화염병 공격을 받기도 했다. 타이부탄 왕실과는 교우가 깊다.

지위[편집]

일본일본의 통치기구Go-shichi no kiri crest 2.svg
일본국 헌법
천황
일본 정부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국회
참의원
중의원
내각
내각총리대신
국무대신
 ・행정기관
재판소
최고재판소
・하급재판소
지방자치
지방공공단체
지방의회

・단체장
국민(주권자)
일본의 선거 일본의 정당
위성에서 바라본 고쿄 부근의 모습(1979년 촬영)

천황의 지위는 메이지 유신일본제국 헌법의 제정으로 일본에서 헌법으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일본제국 헌법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에 제정된 일본국 헌법에서 언급되어 있는 천황의 지위와 권한을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를 가진다. 전자의 경우에는 천황이 통치권자이자 신성한 존재로 규정되었음에 비하여, 후자의 경우에는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고,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며, 이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 국민의 총의에 기한다”고 규정된 것이다.

일본제국 헌법 체제에서의 천황의 지위는 아마테라스오미카미의 의사에 기초한 만세일계의 지위이다. 따라서 천황은 신성불가침의 존재였으며, 천황의 존엄을 침해하는 행위는 불경죄로 의율하여 중하게 처벌한다. 또한 천황은 천황대권으로 불리는 광범위한 권한을 가지고, 모든 통치권을 총람하는 존재였다. 즉 국가의 모든 작용을 통괄하는 권한을 가진다.

그에 비하여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의 일본국 헌법의 천황의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 국민의 총의에 기한” 것으로, 국민주권의 원리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천황제는 절대적인 것이라거나 불가변의 것이라고 할 수 없고, 국민의 총의에 기하여 가변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전체적인 내용면에서도 ‘신의 자손’으로 특별히 보는 규정은 없다. 권한의 면에서도 천황은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국사에 관한 행위”, 이른바 국사행위만을 행할 수 있다.[11]

천황의 국가원수 여부[편집]

일본국 헌법 제4조에서는 천황이 “헌법이 정한 국사에 관한 행위만을 행하며, 국정에 관한 권능은 갖지 않는다”라고 규정되어 있고, 국사 행위로 규정된 내용도 “비준서 및 법률이 정하는 기타의 외교 문서를 인증하”고, “외국의 대사 및 공사를 접수하는” 등의 의례적인 행위에 해당해, 천황이 일반적인 ‘국가원수’인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린다.

천황을 국가 원수로 보는 견해는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며 일본 국민의 통합의 상징”(헌법 제1조)이라고 규정되어 있으며, 각각 국회내각의 지명에 근거하여 행정부(내각)의 수장인 내각총리대신과 사법권을 행사하는 최고재판소 장관을 임명한다(제6조)는 내용에 근거한다. 또한 “국권의 최고 기관이며, 국가의 유일한 입법기관”인 국회를 소집(제7조 2호)·해산(제7조 3호)하는 등, 국정의 중요한 행위를 ‘국사행위’로 수행한다고 규정되어 있다(제7조, 다만 국사행위에는 내각의 조언과 승인에 의함). 또한 “전권위임장 및 대사, 공사의 신임장을 인증”(제7조 5호)하고, “비준서 및 법률이 정하는 기타 외교 문서를 인증”(제7조 8호)하며, “외국의 대사 및 공사를 접수”(제7조 9호)하는 등, 일반적으로 국가 원수가 수행하는 외교상의 주요 행위를 천황이 실시하다고 정하는 등, 대내외적으로 천황이 국가 원수라고 본다.[주 2]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로는, ‘천황은 국가 원수’라고 한 1990년 5월 14일참의원에서의 내각법제국 장관의 답변이 있었다. 또한 천황을 ‘나라의 상징이며, 또 일정 부분의 외교 관계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지위’에 있는, 한정된 의미의 국가 원수로 표현했다. 천황 플래카드 사건에서 도쿄 지방재판소는 ‘국가원수인 천황’이라고 표현하여 천황을 국가원수로 표현했다.

천황을 국가원수로 인정하지 않는 견해는 일반적으로 일본국 헌법 제4조에서는 천황이 “헌법이 정한 국사에 관한 행위만을 행하며, 국정에 관한 권능은 갖지 않는다”라고 규정되어 있고, 국사행위로 규정된 내용도 “비준서 및 법률이 정하는 기타의 외교 문서를 인증하”고, “외국의 대사 및 공사를 접수하는” 등의 의례적인 행위에 해당되어, 실질적인 ‘국가원수’로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이유로 들고 있다.

황위 계승[편집]

황실전범에 따르면 황위는 황통에 속하는 남계의 남자가 다음 순서에 따라 계승한다. 그러나 역대 일본 천황계보를 살펴보면 여자가 천황이 된 경우도 여러번 있었다. 특히 고교쿠 천황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두 번이나 천황에 즉위했다.

  1. 황장자
  2. 황장손
  3. 그 밖의 황장자의 자손
  4. 황차자와 그 자손
  5. 그 밖의 황자손
  6. 황형제와 그 자손
  7. 황백숙부와 그 자손
  8. 최근친 계통인 황족

다만 황사에게 정신이나 신체상 불치의 중환이 있거나 중대한 사고가 있을 때에는 황실회의의 협의를 거쳐 위의 순서에 따라 황위계승의 순서를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역대 일본 천황 계보에 의하면 태어나자마자 즉위하여 8살에 사망하거나 3살에 즉위하여 19살에 선양하고 59살까지 살거나(고토바 천황) 즉위하자마자 제위에서 쫓겨나거나(고분 천황) 천황의 권좌에서 물러난 이후 '原'씨 성을 부여받고 황족의 신분에서 신하의 신분으로 강등당하거나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후계자에게 선양하거나 이미 선양을 하고 나서 다시 정권을 되찾아 재즉위하거나(한 예로 역대 일본 천황 중에 고교쿠 천황사이메이 천황이 동일인물이라는 점.) 하는 등 문제점도 많았다.

현재 일본 황실에는 여자 후손이 많고 남자 후손이 적어서, 국민들 사이에서도 여자 황족도 제위를 계승할 수 있어야 한다는 여론이 생겨나고 있다.

기타[편집]

  • 중국 당나라의 제3대 황제인 고종 이치(李治)는 천황(天皇) 또는 천황대제(天皇大帝)로 불렸다.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메이지 유신 이후 천황이 일본전국을 순시한 적이 있는데, 당시 국민들은 잘 알지도 못하던 천황이 온다는 소식에 대해 “천자님이 온다니 귀찮다”라면서 별로 반기지 않았다고 한다. (《상식밖의 세계사》, 안효상, 새길.)
  2. 천황을 국가원수라고 보는 경우에도 상징천황설(사토 이사오, 이토 마사미)과 천황형식대표설(다바타 시노부), 천황준원수설(고바야시 나오키) 등으로 학설은 갈린다.

참고 문헌[편집]

  1. "이 대통령, 일본 천황 표현 논란", 《조선닷컴》, 2009년 9월 15일 작성.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중략)~“김대중 전 대통령 정부 때 ‘일본 천황’ 표현을 공식적으로 사용키로 했다가 독도 문제가 불거지면서 다시 ‘일왕’ 표현을 쓰기로 한 바 있다”고 밝혔다."
  2. 박주선 (2001년 4월 21일). 일왕인가, 천황인가. 한국기자협회. “‘일본 국왕’의 호칭을 두고 언론사들이 이견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한 언론사 내에서도 일왕, 천황, 일황 등 여러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3. 손병관 (2003년 6월 10일). '일왕'이냐 '천황'이냐... 5년만에 재연된 호칭 논란. 오마이뉴스.
  4. 허영섭. "'일왕'인가, '천황'인가", 《주간경향》, 2005년 2월 1일 작성.
  5. 衆議院憲法調査会事務局 編(참의원 헌법조사회 사무국, 편저) (2003년 2월). 象徴天皇制に関する基礎的資料(상징천황제에 관한 기초적 자료) (일본어) (PDF). 2007년 8월 3일에 확인.
  6. 당 고종의 시호가 「천황대성대홍효황제(天皇大聖大弘孝皇帝)」였던 것 외에도 남한(南漢)의 초대 황제 유습(劉龑)이 붕어한 뒤 「천황대제(天皇大帝)」라는 시호로 기록된 것을 중국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일본에서는 덴무 천황이 천황이라는 칭호를 사용한 최초의 인물로 다이호 율령에서 천황의 칭호가 법제화되고 덴무 천황이 붕어한 뒤에도 그러한 칭호가 세습되었다.
  7. 〈조선시대 日本天皇觀의 유형적 고찰〉, 손승철, 《사학연구》 제50호, 한국사학회, 1995. 12, pp. 217 ~ 250
  8. 일례로 히로히토 “야스쿠니 전범 합사 뒷날 화근 될것”(동아일보, 2007년 8월 6일)을 참조.
  9. 일례로 6자회담 北, 日과 관계정상화 나설까(중앙일보)를 참조.
  10. 北, 일본을 왜나라로 표기 파이낸셜 뉴스 (익스플로러 이외의 웹브라우저에서는 제대로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11. 이상 비교 아시베 노부요시(다카하시 가즈유키 보정), 《헌법(憲法) 제4판》, 이와나미 쇼텐, 2007년, 47~48쪽.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