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카와 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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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카와 천황
일본의 제72대 천황
재위 1072년 ~ 1086년
부황 고산조 천황
이전 천황 고산조 천황
다음 천황 호리카와 천황

시라카와 천황(白河天皇, 백하 천황, 1051년? ~ 1120년)은 일본의 제 72대 천황으로 사다히토(貞仁)'이다. 아들인 제73대 호리카와 천황때부터 시작하여 제74대 도바 천황, 제75대 스토쿠 천황에 이르기까지 3대 43년간 원정을 펼쳤다. 이것을 「치천의 군(治天の君)」이라 한다.


[편집] 약력

엔큐4년(1072년) 20세에 즉위하여 섭관가 후지와라 가문의 권세를 약화시키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

오토쿠 3년(1086년) 병사한 황태자 대신 8세의 아들을 황태자로 내세운 다음날 양위하였다. ( 제73대 호리카와 천황) 시라카와인(白河院)에서 상황 자신이 정무를 맡는 이른바 원정(인세이,院政)이 출현했다. 이후로 임명된 셋쇼간바쿠는 명목상의 존재에 가깝게 되었지만, 시라카와 상황 역시 당초부터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재위 당시부터의 간바쿠였던 후지와라노 모로자네와는 협조 관계를 유지하여 친정기 및 원정 초기에는 섭관 정치와 큰 차이는 없었다.

이러한 상황은 모로자네의 급서에 의한 섭관가 내부의 혼란 및 호리카와 천황의 사망으로 어린 손자인 도바 천황이 즉위한 것이 계기로 바뀌게 된다. 어린 천황(도바 천황)의 재출현과 정치적으로 미숙한 젊은 섭정(후지와라노 다다자네)의 등장이 시라카와 상황에게 권력이 집중된 결과를 낳게 되었다고 짐작된다. 실권을 장악한 법황은 중하류 귀족 및 무가 출신의 신하를 임용해 전제적인 정치를 실시했다. (1120년) 사망하였다. 향년 77세.

[편집] 인물

  •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세 가지, 즉 천하삼불여의(天下三不如意)에 대해 말한 것이 유명하다. 「헤이케 이야기」에는 「가모카와의 물, 주사위의 눈금, 히에이 산의 승려」만은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한탄했다는 일화가 실려있다.
  • 화려한 여성관계로도 유명하여 다이라노 기요모리스토쿠 천황이 그의 사생아라는 소문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스토쿠 천황의 출생 비밀은 훗날 도바 천황스토쿠 천황이 대립하게 된 원인이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