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치미카도 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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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치미카도 천황
일본의 제83대 천황
재위 1198년 ~ 1210년
부황 고토바 천황
이전 천황 고토바 천황
다음 천황 준토쿠 천황

쓰치미카도 천황(土御門天皇, 토어문 천황, 1196년 1월 3일 - 1231년 11월 6일)은 가마쿠라(鎌倉) 시대의 천황으로 83대 천황이다. 1198년 2월 18일(음 1월 11일)즉위하여 1210년 12월 12일(음 11월 25일)양위 후 퇴위. 고토바(後鳥羽) 천황과 그 후궁인 미나모토노 미치치카(源通親)의 딸 쇼메이몬인(承明門院) 미나모토노 아리코(源在子)의 아들로 이름은 타메히토(爲仁)이다.

[편집] 약력

1198년 고토바 천황양위로 4세의 나이에 즉위하였으나 사실상 재위 기간 내내 고토바 상황에 의한 인세이(院政)가 이어졌다. 다만 온화한 성격으로 당시까지 계속되고 있던 막부와 조정의 긴장관계가 풀어질 것을 염려한 고토바 상황의 요구로 1210년 동생인 준토쿠(順德) 천황에 양위한 후 퇴위했다.

재위 기간 동안, 교토조정에서는 외할아버지인 미나모토노 미치치카가 조정(만도코로; 政所)의 장관인 벳토(別當)의 관직을 맡아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고, 가마쿠라에서는 1199년 가마쿠라 막부의 초대 쇼군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가 죽은 후 사실상 호조 도키마사(北条時政)를 위시한 호조 가문에 의한 고케닌(御家人) 정치가 행해지고 있었다.

퇴위 후인 1221년 고토바 상황에 의한 가마쿠라 토벌 시도가 실패하여 막부의 반격을 받은 조큐의 난(承久の亂)이 발생하여 고토바 상황은 오키(隱岐) 섬, 준토쿠 상황은 사도(佐渡) 섬에 유배되는 사건이 발행했다. 쓰치미카도 상황은 사건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 대상은 되지 않았지만 아버지인 고토바 상황이 유배되었는데 아들인 자신이 교토에 남아있는 것을 견딜 수 없다며 스스로 시코쿠(四國) 섬의 도사노쿠니(土佐の國) 지방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후 시코쿠 섬 동쪽, 조금 더 교토에 가까운 아와노쿠니(阿波の國)로 거처를 다시 옮겼는데, 가마쿠라 막부는 고토바, 준토쿠에 대한 처우와는 달리 아와노 구니의 슈고(守護)에 명령하여 거처로 궁(宮)을 조영(造營)하게 하는 등 후한 대접을 보였다.

1231년 10월 숨을 거두었다. 당시의 관례에 따라 죽기 직전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화장되어 가네가하라(金ヶ原)에 묻혔다. 현재 교토 부 나가오카쿄(長岡京) 시에 있는 가네가하라노 미사사기(金原陵)가 그곳이며, 도쿠시마(德島) 현 나루토(鳴門) 시에는 유해를 화장한 곳에 조성한 화장총(火葬塚)이 있다.

불교 종파인 일련종(日蓮宗)의 개조인 니치렌은 쓰치미카도 천황의 아들이라는 설이 있으나 정설은 아니다.

[편집] 재위 중의 연호

쓰치미카도 천황 재위 중 사용된 연호는 다음과 같다.

순서 연호 연호 사용 시작 날짜 연호를 바꾼 날짜
1 겐큐(建久) (즉위: 1198년 1월 11일) 1199년 4월 27일
2 쇼지(正治) 1199년 4월 27일 1201년 2월 13일
3 겐닌(建仁) 1201년 2월 13일 1204년 2월 20일
4 겐큐(元久) 1204년 2월 20일 1206년 4월 27일
5 겐에이(建永) 1206년 4월 27일 1207년 10월 25일
6 조겐(承元) 1207년 10월 25일 (퇴위: 1210년 11월 25일)
주(註): 표의 모든 날짜는 음력(陰歷)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