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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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道教)는 중국의 종교로서, 신선 사상(神仙思想)이 근본이 되어 음양(陰陽)·오행(五行)·복서(卜筮)·무축(巫祝)·참위(讖緯) 등을 더하고, 거기에 도가 철학(道家哲學)[1]을 도입, 다시 불교의 영향을 받아 성립했다.

목차

[편집] 개설

도가(taoism)와 도교는 사상신앙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즉 도가의 이론가라 할 수 있는 노자는 종교로서의 도교에서는 신선으로, 옥황상제에 버금가는 신격화가 이루어질 정도이다. 도가는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주축으로 하나, 도교는 노자의 저서인 《도덕경》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고 경전화하였다. 고대 중국의 통치자인 황제와 노자를 신봉한다고 하여 황로사상, 황로교라고 한다. 중국의 민간 신앙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즉 중국인은 어떤 종교를 믿든지 그 기본 신앙에는 도교적인 요소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도교도 여러 가지 파가 있다. 그중에 천사도는 장씨가 교주를 세습하여 현재 대만에도 천사도의 마지막 교주가 생존하고 있다. 신선연단, 불로장생, 옥황상제 등을 믿는다. 불교와 교류하면서 서로 강력한 영향을 주고 받았다.

도교는 엄밀하게 말하면, 신선사상에 중국의 민간신앙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종교다. 흔히들 “유불선” 삼교라고 하나, “유불도” 삼교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반에서는 도교와 신선도를 흔히 같은 단어로 이해한다. 그 골자는 불로장생에 있으며, 의학·약학·화학·연금술(鍊金術)을 동반하고, 그 위에 신비적인 방술(方術)을 닦음으로써 스스로 진인(眞人)[2]이 되기를 원한다.

도교가 백성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유교성리학처럼 배타주의나 편향주의로 나아가지 않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조화로움을 지녔기 때문이다. 민중의 도교는 현세의 이익을 전적으로 하여 농민 폭동과도 관련을 맺어 송나라 이후 《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 《보권(寶卷)》 《공과격(功過格)》 등의 책이 나타났다.

도교는 원시천존(元始天尊)을 최고로 하는 다신교(多神敎)로, 불전(佛典)에서 배워 만든 도장(道藏)은 동현(洞玄)·동진(洞眞)·동신(洞神)의 3부(三部)로 나뉘어져 있다.

도교의 창시자는 후한시대의 장도릉(중국어 정체: 張道陵, 병음: Zhāng Dàolíng 장다오링[*])으로 알려져 있다.

[편집] 역사

후한 말년에 장도릉(張道陵)의 오두미교(五斗米敎)가 도교의 원류이며, 그의 자손은 용호산(龍虎山)[3]에서 정일교(正一敎)를 개교하였으나, 진(晋)나라 갈홍(葛洪)은 《포박자(抱朴子)》를 지어 일파(一派)를 만들고, 양(梁)나라 도홍경(陶弘景)은 모산파(茅山派)[4]를 형성했다.

그러나 북위(北魏)의 구겸지(寇謙之)에 이르러 도교로 확립되어 국가적 종교로 불교와 대립했다. 당나라·송나라 시대에는 조정의 지지를 얻어 성행했으나 도사(道士)의 퇴폐(頹廢)를 초래했으므로 금나라 때는 혁신 운동이 일어나 전진(全眞)·태일(太一)·진대도(眞大道)의 3파가 일어났다.

[편집] 도교의 신

  • 원시천존
  • 영보천존
  • 태상노군
  • 옥황상제
  • 서왕모
  • 동방동극청화대제태을구고천존
  • 서방태극천황대제
  • 남방남극장생대제옥청진왕-원시천존의 9번째 아들.
  • 북방북극중천자미대제
  • 승천효법후토황지지
  • 남방남극관음
  • 동방숭은성제
  • 3도10주선옹동화대제군
  • 북방북극현령두모원군
  • 중앙황극황각대선
  • 금광성모
  • 항아
  • 탁탑천왕
  • 나타
  • 이랑진군
  • 토지공
  • 태산대제
  • 뇌공

[편집] 도교와 한국

[편집] 전래

624년[5] 고구려에서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어 도교를 청하매 당나라에서는 도사(道士)로 하여금 천존상(天尊像)과 도법(道法)을 가지고 와서 《노자(老子)》를 강(講)하게 한 것이 우리나라 도교 전래의 첫 기록이다. 이듬해에는 불(佛)·노(老)의 교법(敎法)을 배워왔으며, 643년[6] 연개소문(淵蓋蘇文)의 청으로 당나라에서 도사 숙손(淑孫) 등 8인과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을 보내왔고, 650년[7]에는 반룡사(盤龍寺)의 승려 보덕(普德)이 국가에서 도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경시(輕視)함을 개탄하고 백제로 옮겨간 일이 있었으니, 고구려가 일시 도교를 매우 숭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신라는 당나라와 문물 교류가 성하여 도교가 상당히 유행했을 것이나 자세한 기록이 없으며, 다만 국모신(國母神)인 서술성모(西術聖母)를 일명 선도성모(仙桃聖母)라 하여 후세에 여선적(女仙的)으로 숭배한 일이 있고, 국가의 제사에 오악신(五岳神)을 받들어 어느 정도 도교적 색채를 띠게 되었다. 말엽에 당나라에 오래 머물던 김가기(金可紀)·최치원(崔致遠) 등이 선도(仙徒)로서 드러났음은 아마 특례일 것이다.

[편집] 고려

고려에 들어와서는 송나라의 숭선(崇仙)의 풍이 조금씩 전래하다가 예종 때에 송나라 휘종(徽宗)이 도사를 보내어 법을 전하니 개성(開城)의 북쪽에 복원관(福源觀)을 세워 삼청상(三淸像)을 모시고 도관(道觀)·도사(道士)를 두었다. 그러나 도교는 국가와 임금의 기축(祈祝)에 그치고 일반 민중의 종교적 발전에까지는 이르지 못하였고, 겨우 성신(星辰)에 대한 신앙, 부적(符籍)의 사용, 경신(庚申)을 지킨 것 등이 민속화했을 뿐이다. 도교에서 행하는 제사 기도는 재초(再礁)라고 하는데, 고려에서는 정사색(淨事色)이란 마을이 있어서 여기에서 행해졌다.

[편집] 조선

조선에서는 고려의 뒤를 이어 도교의 재초를 행하되 이미 도관(道觀)의 이름을 쓰지 않고 경복궁의 북쪽에 소격서(昭格署)를 두어 거기에 태일전(太一殿)·삼청전(三淸殿) 등을 세우고 천존(天尊)·성군(星君)·신장(神將) 등 수백위(數百位)를 모셔 놓고 때때로 치재(致齋)하였다. 지금의 삼청동(三淸洞)·성제정(星祭井)·소격동(昭格洞) 등이 다 그 유적이다. 그러나 국가적 시설을 떠나서 단학(丹學)과 선풍(仙風) 및 도교에서 나온 습속은 전대(前代)에 비하여 민간에 많이 행해지고 임진왜란 이후에 명군(明軍)에게서 배운 관우(關羽)의 숭배 등이 유행하였다.

[편집] 함께 보기

[편집] 주석

  1. 노장 사상
  2. 신인·선인
  3. 장시 성 소재
  4. 상청파
  5. 고구려 영류왕 7
  6. 고구려 보장왕 2
  7. 고구려 보장왕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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