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위 (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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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년 ~ 535년
 

중국의 위치
440년 당시의 북위(파란색).
수도 평성, 낙양
공용어 중국어
정부 형태
황제
386년 ~ 409년
532년 ~ 535년
군주제

태조 도무제
효무제
약사
 • 성립
•멸망

386년
535년
위진 남북조 왕조들의 계통도
후조(後趙) · 염위(冉魏) · 전연(前燕) · 동위(東魏) · 북제(北齊)의 수도였던 (鄴)은 현재의 허베이 성 한단 시 린장 현허난 성 안양 시의 경계에 위치하였다
479년 당시의 북위.
중국의 역사
중국의 역사
신화와 고대
선사 시대
황하장강 문명
신화·삼황오제
기원전 2070?~기원전 1600?
기원전 1600?~기원전 1046?
기원전 1046?~기원전 256
  서주 기원전 1046?~기원전 771
  동주 기원전 771~기원전 256
    춘추 시대 기원전 771~453
    전국 시대 기원전 453~221
제국의 시대
기원전 221~기원전 206
기원전 208~기원전 205
서초 기원전 205~기원전 202

기원전 202~서기 220
  전한 기원전 202~서기 8
  8~23
  후한 25~220

삼국 시대 220~280
  220~265
  촉한 221~263
  229~280
265~420
  서진 265~316
  동진 317~420 오호 십육국 시대
304~439
남북조 시대 420~589
581~618

618~907
무주 690~705

오대십국시대
907~960

916~1125

960~1279
  북송
 960~1127
서하
1038~1227
  남송
 1127~1279

1115~1234
1271~1368

1368~1644

1644~1645

1616~1912

현대의 중국
중화민국 (북양 정부, 국민정부) 1912~1949
중화인민공화국
1949~현재

중화민국
(타이완)
1949~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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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北魏: 386~534)는 중국 위진시대(220~420)에 선비족(鮮卑) 탁발부(拓跋部)에 의해 화북에 건국되어 남북조시대(439~589)까지 이어진 왕조이다. 국호가 위나라 였기에 전국시대 (魏)나라와 삼국시대 조조(魏)나라와 구별하기 위해 북위라고 불리고 있다. 기타 후위(後魏), 원(元)씨가 지배하였다 하여 원위(元魏), 대위(代魏)란 호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역사[편집]

탁발부와 대나라[편집]

261년 탁발부(拓跋部)의 탁발역미(拓跋力微: 족장 재위 219~277)는 조조의 위나라(220~265)에 조공을 바쳤는데, 이것이 훗날 위나라를 국호로 정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

3세기 중엽 탁발부는 내몽골의 바옌타라(巴彦塔拉) 지방에서 세력을 넓혔다. 조조의 위나라로부터 제위를 양도받아 성립된 서진(西晉: 265~317)은 탁발부의 세력을 이용해 북방을 안정시키기 위해 산시 성(山西省) 북부의 땅을 내어주어 살게 했다. 이에 따라 탁발부는 산시 성에서 세력을 신장하였다.

315년 오호십육국 시대에 족장 탁발의로(拓跋猗盧)는 서진(西晉: 265~317)의 관작을 받고 대나라(代: 315~376)의 왕으로 봉해졌다.

대나라탁발십익건(拓跋什翼犍) 때 전진(前秦: 351~394)의 부견(符堅: 재위 357~385)과의 싸움에 패하여 376년에 전진에게 멸망당했다.

북위의 성립[편집]

대나라 정권이 와해되었지만, 전진(前秦: 351~394)의 부견비수 전투에서 패한 기회를 이용하여 탁발십익건의 손자 탁발규(拓跋珪: 후의 도무제 · 道武帝, 재위 386~409)는 386년 대나라 왕을 칭하고 자립했다. 그 후 스스로 황제라 칭하고 국호를 (魏)라고 하였다(386년). 이어 내몽골의 여러 부족을 평정하고 후연(後燕: 384~407)을 격파, 허베이(河北) 평야에 진출하여 국도를 평성(平城), 즉 지금의 산시 성(山西省) 다퉁(大同)에 정하였다(398).

도무제는 고비사막계, 정령족, 흉노족을 토벌하여 오르도스 일대를 지배하에 두고, 중국으로 진출을 개시해 허베이 성 일대를 영유하고 있던 후연을 공격해 397년 수도 중산(中山)을 함락하고 후연을 멸망시켜, 중원에 안주했다. 398년 수도를 평성(平城)으로 옮기고, 그 부근 태행산맥 동쪽의 6주의 백성 46만명을 소개시켰다.

도무제는 중국 전통의 국가체제를 채용하여 탁발부 밑에 있던 여러 부족을 해산시키고, 족장이하 부족민은 모두 중국의 호적에 편입시켜 한족과 혼합시켰다. 더불어 한족 출신의 명족(名族) 인재을 등용하여 국정에 참여하게 하였다. 이로써 북조 귀족제의 기초를 형성하게 된다.

북위의 발전[편집]

도무제를 이은 명원제(明元帝)는 남조 송나라를 공격해 하남을 빼앗고, 명원제를 이은 태무제(太武帝)는 (夏), 북연(北燕), 북량(北凉)을 차례로 멸망시켜,439년 화북을 통일하였다. 서역에서 조공을 바쳐오는 나라만 해도 20여개국에 이르니 북위의 국세는 크게 울려퍼졌다. 이때부터 중국은 남북조 시대로 들어서게 되었다.

태무제는 내정을 정비하면서 또한 남조 송에 대한 공격을 개시해 회남과 강북을 빼앗았고, 이때 도사 구겸지가 도교 교단을 확립하고, 한인 관료 최호와 손을 잡고, 태무제에게 진언하여 폐불을 단행하게 하였다.(삼무일종의 폐불 첫 번째) 이 시기에 선비족의 한인 동화와 도시 귀족화가 진행되면서 서서히 북위 내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6대 효문제(孝文帝)의 시기 풍태후(馮太后)가 섭정할 때 유교적인 예법을 채용하고, 균전제을 시행하면서 삼장제을 확립했다. 풍태후의 사후, 친정을 개시한 효문제는 493년 수도를 평성에서 낙양(洛陽)으로 천도하였다. 그는 선비족의 복장과 언어를 금지하고, 성씨도 중국풍으로 바꿔 탁발씨를 원씨(元氏)로 고치고, 선비족과 한족 명족과의 통혼을 장려하면서 한족 문화와 동화하는 정책을 추진하여 북위의 문화는 크게 발전하였으나 일면 지금까지 내려온 선비족 고유의 소박한 상무정신은 사치와 문약으로 바뀌게 되었다.

북위의 쇠퇴 및 멸망[편집]

효문제 사후 어린 효명제(孝明帝)을 대신해 섭정한 영태후(靈太后)는 정치를 하면서 불교에 심취해 전국에 사탑을 건립하여 재정을 어지럽혀, 국내에 도적이 봉기하고, 그동안 누적된 한화정책에 대한 선비족의 불만은 523년 6진의 난을 초래하여 북위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

6진은 원래 북위의 수도 평성을 지키던 6곳의 군사기지로 이곳엔 왕실 계통의 유력자들이 머물면서 국경을 지켰기에 대우가 좋았다. 하지만 급진적인 한화정책과 수도의 이전으로 인해 대우가 소홀해지면서 그 불만이 누적되어 6진의 난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영태후는 효명제를 독살하고 후계자를 세우지만 6진의 난의 진압과정 중 대군벌으로 성장한 산시 성 삭현지방의 흉노족 이주영(爾朱榮)이 군대를 이끌고 낙양에 들어와 효장제(孝莊帝)를 옹립했다. 이주영은 528년 태후와 후계자를 황하에 던져버리고, 승상 이하 대신 1,000명을 처형했다.(하음의 변(河陰의 變)

이주영은 6진의 난을 평정하고 진양(晋陽)에서 조정을 움직였으나 이주씨 휘하의 장군 고환(高歡)이 그 폭정을 비판하여 이주씨와 대립하고 532년 낙양에 들어와 이주씨에 의해 세워진 절민제(節閔帝)을 폐위하고 효무제를 세웠다. 고환은 이주씨 일당을 각지에서 격파하여 정권은 그에게로 넘어갔다.

그러나 효무제는 이번엔 고환의 전횡을 싫어해 낙양을 탈출해 장안(長安)으로 도망쳐 우문태(宇文泰)에게 의지하자, 고환은 효정제(孝靜帝)를 옹립하고 534년 수도를 (鄴)으로 옮겼다. 같은 해 우문태는 효무제를 살해하고 문제(文帝)를 즉위시키니 이로써 북위는 동서로 분열하게 되었다. 역사상 이것을 동위, 서위라 부른다.

동위의 정권은 모두 고씨의 손에 있어, 고환의 아들 고양(高洋)이 재상이 되어 550년 효정제로부터 제위를 빼앗아 북제(北齊)을 건국했다. 서위에서도 주권은 우문씨가 차지하여 우문태의 아들 우문각(宇文覺)이 556년 공제(恭帝)을 폐위하고 다음 해 북주를 건국하니 이로써 동서 양위는 멸망했다.

모사자귀제도[편집]

북위에선 외척의 내정간섭을 막기 위해 실시한 모사자귀제도라는 잔혹한 제도를 실시했다. 이것은 후궁에게서 아이를 얻으면 생모를 죽이고, 아이는 따로 키우는 상황이 발생했다.

주요 명신 및 명장[편집]

역대황제[편집]

북위 황제와 연호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 - 헌명황제
(獻明皇帝)
(북위 도무제 추숭)
탁발식(拓跋寔) - -
제1대 북위 태조
(北魏太祖)
(북위 열조<北魏烈祖>)
도무황제
(道武皇帝)
탁발규(拓跋珪) 등국(登國) 386년 ~ 396년
황시(皇始) 396년 ~ 398년
천흥(天興) 398년 ~ 404년
천사(天賜) 404년 ~ 409년
386년 ~ 409년
제2대 북위 태종
(北魏太宗)
명원황제
(明元皇帝)
탁발사(拓跋嗣) 영흥(永興) 409년 ~ 413년
신서(神瑞) 414년 ~ 416년
태상(泰常) 416년 ~ 423년
409년 ~ 423년
제3대 북위 세조
(北魏世祖)
태무황제
(太武皇帝)
탁발도(拓跋燾) 시광(始光) 424년 ~ 428년
신가(神䴥) 428년 ~ 431년
연화(延和) 432년 ~ 435년
태연(太延) 435년 ~ 440년
태평진군(太平眞君) 440년 ~ 451년
정평(正平) 451년 ~ 452년
423년 ~ 452년
제4대 -
(남안은왕<南安隱王>)
탁발여(拓跋余) 승평(承平) 452년 452년
- 북위 공종
(北魏恭宗)
(북위 문성제 추숭)
경목황제
(景穆皇帝)
탁발황(拓跋晃) - -
제5대 북위 고종
(北魏高宗)
문성황제
(文成皇帝)
탁발준(拓跋浚) 흥안(興安) 452년 ~ 454년
흥광(興光) 454년 ~ 455년
태안(太安) 455년 ~ 459년
화평(和平) 460년 ~ 465년
452년 ~ 465년
제6대 북위 현조
(北魏顯祖)
헌문황제
(獻文皇帝)
탁발홍(拓跋弘) 천안(天安) 466년 ~ 467년
황흥(皇興) 467년 ~ 471년
465년 ~ 471년
제7대 북위 고조
(北魏高祖)
효문황제
(孝文皇帝)
원굉(元宏) 연흥(延興) 471년 ~ 476년
승명(承明) 476년
태화(太和) 477년 ~ 499년
471년 ~ 499년
제8대 북위 세종
(北魏世宗)
선무황제
(宣武皇帝)
원각(元恪) 경명(景明) 500년 ~ 504년
정시(正始) 504년 ~ 508년
영평(永平) 508년 ~ 512년
연창(延昌) 512년 ~ 515년
499년 ~ 515년
제9대 북위 숙종
(北魏肅宗)
효명황제
(孝明皇帝)
원후(元詡) 희평(熙平) 516년 ~ 518년
신귀(神龜) 518년 ~ 520년
정광(正光) 520년 ~ 525년
효창(孝昌) 525년 ~ 528년
무태(武泰) 528년
515년 ~ 528년
임시 - 소공황제
(少恭皇帝)
원쇠(元釗) - 528년
- 북위 숙조
(北魏肅祖)
(북위 효장제 추숭)
문목황제
(文穆皇帝)
원협(元勰) - -
- - 효선황제
(孝宣皇帝)
(북위 효장제 추숭)
원소(元劭) - -
제10대 북위 경종
(北魏敬宗)
효장황제
(孝莊皇帝)
(무회황제<武懷皇帝>)
원자유(元子攸) 건의(建義) 528년
영안(永安) 528년 ~ 530년
528년 ~ 530년
제11대 북위 효종
(北魏孝宗)
혜애황제
(惠哀皇帝)
(장광왕<長廣王>)
원엽(元曄) 건명(建明) 530년 ~ 531년 530년 ~ 531년
- - 혜선황제
(惠先皇帝)
(북위 절민제 추숭)
원우(元羽) - -
제12대 북위 열종
(北魏烈宗)
절민황제
(節閔皇帝)
(광릉왕<廣陵王>)
원공(元恭) 보태(普泰) 531년 ~ 532년 531년 ~ 532년
제13대 - 폐황제
(廢皇帝)
(안정순문왕<安定順文王>)
원랑(元朗) 중흥(中興) 531년 ~ 532년 531년 ~ 532년
- - 무목황제
(武穆皇帝)
(북위 효무제 추숭)
원회(元懷) - -
제13대 북위 현종
(北魏顯宗)
효무황제
(孝武皇帝)
(출황제<出皇帝>)
원수(元脩) 태창(太昌) 532년
영흥(永興) 532년
영희(永熙) 532년 ~ 534년
531년 ~ 534년

참고[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