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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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년~420년
서기 280년 진나라의 최대강역.
서기 280년 진나라의 최대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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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무황제(초대)
민황제
중종 원황제
공황제(말대)
국성하내 사마씨
역사
 • 성립265년
 • 멸망420년
인문
공용어고대 중국어
민족한족
종교
종교불교, 도교, 유교, 중국 민간신앙

(晉, 265년 ~ 420년)은 위진남북조시대 동안 중국에 존재했던 왕조로, 시기에 따라 통일 왕조인 서진(西晉, 265년 ~ 317년)과 그 잔존국인 동진(東晉, 317년 ~ 420년)으로 나뉜다. 건국 초기 무제 사마염은 안정적인 정치로 새로운 나라의 기반을 다져나갔으나, 동북방의 이민족들이 서진을 공략하기 시작하여 많은 한족들이 노예로 끌려가고 혜제 때에 팔왕의 난으로 국운이 기우고 만다. 무려 16년 동안 팔왕의 난이 중국을 휩쓸고 있던 중에, 중국을 점령하고 있던 동북방의 이민족들이 본격적으로 중국을 정복하였다. 이것이 영가의 난을 초래하게 되었고 흉노의 유연이 세운 한나라가 서진을 공격해 정복하고 서진 사마씨들을 사로 잡아 서진은 건국 52년 만에 멸망했다. 흉노족 유연은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대부분의 사마씨들을 숙청하였으며, 사마예는 남쪽으로 도망쳐 317년 동진을 세워 진나라의 명맥을 유지해나갔다.

동진은 화북으로부터 피해 온 한족들로 운영되었는데, 화북지방으로부터 온 한족 피난민은 초기에 세금을 감면하는 등 세제상 혜택을 주어 적극적으로 유랑민을 받아들이고 미개지 개간을 장려하였다. 그 결과로, 원래 습기가 많아 수자원이 풍부한 지역이기도 하여, 경제적으로 당시의 화북 지방과 겨룰 정도로 번영하였다. 이후 제9대 효무제(孝武帝) 때 이민족 왕조인 전진(前秦)의 남하정복 전투에 의해 위기를 맞게 되며 전진에 조공을 바치기도 했지만, 383년 비수 대전(淝水大戰)에서 승리하여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이때부터 한족 농민 반란이 잦아졌고, 무장 환현(桓玄)이 반란을 탄압한다는 명분하에 거병하여 집권하였으며, 유유(劉裕)가 이를 진압하고 이에 대한 명분으로 새로이 집권에 성공한 뒤 유송을 건국하고 제위에 오르면서 동진은 멸망하게 되었다.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