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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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黃帝)는 중국 전국 시대 이후로 문헌에 등장하는 오제(五帝) 중 첫번째 제왕(帝王)으로, 삼황(三皇)에 이어 세상(중국)을 다스렸다고 한다. 성은 공손(公孫), 이름은 헌원(軒轅)이다. 황제헌원씨(黃帝軒轅氏)라고도 부른다. 도교의 시조로도 추앙받고 있으며, 죽어서 신이 되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황제헌원씨의 왕후는 서릉씨(西陵氏)이다. [1]
목차 |
[편집] 개요
한대의 사마천이 저술한 역사서인 《사기》에 의하면, 소전(少典)의 아들로 이름을 헌원이라 하며, 치우를 물리치고 신농에 이어 제왕이 되었다고 한다.
이어지는 4명의 제왕(전욱, 제곡, 요, 순)이 황제의 자손으로 설명되었고, 또한 하·은·주·진의 시조와 이후의 많은 제후들이 그 자손이 되는데, 이는 고대 중국에서 도시국가군이 만들어지고 각각의 군주가 제후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형식적인 혈연관계를 맺는 과정을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후대에는 중국의 많은 가문에서 3대(하·상·주)의 제왕이나 제후를 그 시조로 하여 지금도 많은 한족이 황제를 선조로 여기고 있다. 또한, 청대 말기에 혁명파가 황제가 즉위한 해를 기원으로 하는 '황제기원(黄帝紀元)'을 사용하여 청나라 왕조에 대항하는 의식을 나타내었음이 잘 알려져 있다.
청나라 말기의 강유위, 고힐강 등의 의고학파(疑古學派)는 황제 신화를 비롯한 삼황오제의 신화를 비판적으로 분석하여 역사성을 부인하고 전국시대에서 위진남북조시대에 걸쳐 종교적 영향으로 꾸며진 신화로 판정하였다.[2]이와 함께 일본에서도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 이치무라 산지로(市村瓉次郎), 이이지마 타다오(飯島忠夫) 등이 황제의 실존을 부정하는 논문을 저술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중국의 학계는 국가의 개입 아래 한족 중심의 민족주의적인 영향으로 황제 신화를 한족의 국조 설화로 중요시 여기면서, 황제나 치우를 역사적 실존인물로 구축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3]
한편, 황제는 중국 의학의 시조로도 여겨지고 있다. 한대에는 저자를 알 수 없는 의학서들을 황제의 저술로 권위를 더하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여겨진다. 현존하는 중국의 가장 오랜 의학서인 《황제내경소문(黄帝内經素問)》, 《황제내경령추(黄帝内經靈樞)》도 황제가 저술한 것으로 되어 있다.
[편집] 주요 문헌
[편집] 사기
황제가 중국의 역사로서 등장한 것은 사마천의 《사기》 〈오제본기〉[4]가 최초이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황제(黃帝)의 명칭은, 제위시 황룡이 나타나 토덕(土德)의 상서로운 징조가 있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라 한다. 오행설에 따르면 황색은 흙에 해당된다.
- 염제 신농과 그 제후들, 치우를 물리치고 천자(天子)가 되었다.
- 산을 개간하고 길을 통하게 하였다.
- 탁록 아래의 평원에 도읍을 정했다.
- 보정(寶鼎)과 신책(神策)을 얻었다.
- 오곡을 심어 백성을 돌보았다.
- 제사 의식을 연구하였다.
그밖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각 사료에 단편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편집] 포박자
《포박자(抱朴子)》에 따르면, 청구(靑邱)에서 자부선생(紫府先生)으로부터 《삼황내문(三皇內文)》을 받았다고 한다.
[편집] 관련 문화
[편집] 시조로서의 황제
오늘날에도 공손씨, 희씨, 헌원씨 등은 황제를 직접 시조로 받들고 있다. 한국의 변(邊)씨 또한 헌원을 시조로 한다.[5]
[편집] 별자리
동아시아의 별자리 중 성수(星宿)에 속한 헌원은 황제 헌원에서 유래하였다.
[편집] 제사
조선시대 초기에는 왕이 군사 훈련시 황제 헌원에 마제를 지냈다.
[편집]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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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책의 저자로서 알려져 있으나,[6] 실제 저자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 도가
《황제사경(黃帝四經)》 4편, 《황제명(黄帝銘)》 6편, 《황제군신(黄帝君臣)》 10편, 《잡황제(雑黄帝)》 58편
- 신선
《황제잡자보인(黄帝雑子歩引)》 18권, 《황제기백안마(黄帝岐伯按摩)》 10권, 《황제잡자지균(黄帝雑子芝菌)》 18권, 《황제잡자십구가방(黄帝雑子十九家方)》 21권
- 천문
《황제잡자기(黄帝雑子気)》 33편
- 오행
《황제음양(黄帝陰陽)》 25권, 《황제제자론음양(黄帝諸子論陰陽)》 25권
- 잡점
《황제장류점몽(黄帝長柳占夢)》 11권
- 의경
《황제내경(黄帝内經)》 18권, 《황제외경(黄帝外経)》 37권
- 경방
《신농황제식금(神農黄帝食禁)》 7권
- 방중
《황제삼왕양방(黄帝三王陽方)》 20권
[편집] 주석
- ↑ 서릉씨는 최초로 누에치는 법을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조선 시대에는 선잠단을 세워 매년 서릉씨에 제를 지냈다.
- ↑ 빈미정, 〈황제신화전설에 대한 문헌적 고찰〉, 《중국문학》제44집, 2005
- ↑ 김종미, 〈중국문헌(中國文獻)에 나타나는 "치우(蚩尤)"의 이중형상(1) -제국(帝國)의 희생양, 치우(蚩尤)의 악마형상-〉, 《중국어문학지》, 2007 / 김선자, 《만들어진 민족주의 황제 신화》, 책세상, 2007
- ↑ 사마천, 《사기》〈오제본기〉, 기원전 2세기경
- ↑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
- ↑ 《漢書》〈藝文志〉
[편집] 같이 보기
[편집] 참고문헌
- 《열자》, 중국 전국시대.진나라
[편집]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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