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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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태산 · 동천 · 봉래산
지역별
베트남 · 싱가포르 · 일본 ·
중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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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토론  편집  역사

도덕경》(중국어 간체: 道德经, 정체: 道德經, 병음: dàodéjīng 듣기 )은 노자(老子)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도가의 대표적인 경전으로 《노자(老子)》로도 불린다. 노자는 이 저서에서 전체적으로 자연에 순응하는 무위(無爲)의 삶을 살아갈 것을 역설하였다.

도덕경의 내용[편집]

도덕경의 판본[편집]

현재 우리가 알고있는 도덕경을 규정한 것은 삼국시대 말기에 왕필이 정리한 것이며 이를 왕필본 혹은 통용본이라고 부른다.

1973년 중국 장시성의 마왕퇴(BC 168년 추정)에서 발굴된 백서본은 왕필본과 크게 다르지 않은 텍스트가 담겨있었다. 즉 왕필본의 원본이 바로 백서본인 것이며 왕필이 정리하기 이전에 중국의 여러 사서에 인용된 것도 이 백서본이다. 백서본은 두 종류로 백서본 갑본은 전국시대 말기(BC 247년 이전)로, 을본은 한나라 초기(BC 195년 이전)로 추정된다.[1]

1993년 중국 화북성의 곽점촌에서 발견된 곽점본(혹은 죽간본, BC 300년 추정)은 백서본의 중요한 내용이 많이 빠져있는 미완결된 형태이나 백서본에 없는 내용 일부가 있어 새로운 텍스트에 의한 연구성과가 나오고 있다. 곽점본과 백서본의 주요 차이는 아래와 같다.

  1. 곽점본은 대나무에 쓰였고, 백서본은 비단에 쓰였다.
  2. 곽점본의 상당수 내용이 백서본에는 없으며, 백서본에 없는 내용 일부가 곽점본에 있다. 곽점본은 2000여자로 백서본의 40% 정도의 분량이다.
  3. 곽점본에 비해 백서본의 내용에는 조금씩 추가된 것들이 있으며 문장 형태가 말끔해지는 경향이 있다.
  4. 백서본에는 전사과정의 기본적인 오류와 원래는 주석이었으나 옮기는 과정에서 본문으로 들어간 오류 등이 보인다.
  5. 곽점본에 비해 백서본이 더욱 반 유가적인 경향을 띤다.
  6. 백서본이 더욱 정치술수적인 내용을 많이 가지고 있어, 백서본 성립 시기에 유행한 황로학의 영향을 받아 통치술에 가까운 내용이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7. 백서본은 음양사상을 받아들여 기화론적 우주생성론의 내용을 담고있다.

도덕경을 상하로 나눈 것은 전한 말기의 유향이었다. 현존하는 완결된 도덕경 주석서로서 가장 오랜 것으로 '하상공'(혹은 '하상장인')이 지은 하상공장구가 있다. 후한 시기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하상공장구는 당나라 시기까지 가장 유행한 판본으로 양생론적 성향이 강해 초기에는 도교도들에 의해 많이 읽혔으나 이후 당나라 시대까지 가장 많이 읽히는 판본이 되었다.[2]

왕필은 18세이던 243년에 노자도덕경주를 완성하고 이것이 이후 위나라의 재상 하안에 의해 점차 알려지게 되었다. 당나라때까지만 해도 하상공장구에 비해 덜 읽혔으나 송나라때 이후 유학자들에 의해 주요한 판본으로 자리잡았으며 이 지위는 명청대에 더욱 확고해져서 백서본 출토 이전까지 무려 천년 이상 동서양 도덕경 이해의 근간이 되었다.[3] 그러나 그 탁월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도덕경을 유가적으로 해석한 부분이 많아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백서본과 왕필본의 차이는 아래와 같다.

  1. 백서본은 장절구분이 거의 없이 이어 적혀있었으나 왕필본에서는 장절구분이 잘 되어있다.[4]
  2. 백서본은 덕경이 도경보다 앞에 있으나 왕필본은 도경이 덕경보다 앞에 있다.
  3. 왕필본 장절구분을 기준으로 하면 백서본은 24-22-23장과 41-40-42장, 66-80-81장의 순서로 되어있다.
  4. 백서본은 왕필본에 비해 시대 특성상 가차자가 많이 쓰였고 따라서 그 글자들의 해석이 복잡하다.
  5. 백서본은 왕필본에 비해 허사가 많이 남아있어 왕필본의 끊어읽기 문제를 다소 해결해준다.

곽점본, 백서본, 왕필본의 차이만 보아도 전설처럼 노자가 함곡관을 넘으면서 도덕경 5000여자를 남겼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도덕경은 일거에 성립된 것이 아니고 고대부터 전국시대 말기까지의 노자 사상이 응축되어 성립된 책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복잡한 성립과정은 도덕경 안에 여러 모순된 사상이 뒤섞여 존재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기본적으로 하상공장구가 양생술로, 왕필주가 신비주의로 해석하였으며 그 외에도 무위자연주의, 반유가주의, 반법가주의, 음양가 사상, 무정부주의, 병가 사상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될 수가 있다.

한반도로의 유입[편집]

삼국시대 이후에 이미 도덕경은 읽혔을 것으로 추정되나 해설서로 남은 것들 중 대표적인 것은 아래와 같다.[5]

대부분 왕필의 관점을 따르고 있다.[8]

이후 몇가지 한국어 번역이 시도되었다.

바깥 고리[편집]

주석[편집]

  1. 이석명 역, 백서 노자(2003). 청계. ISBN 89-88473-60-4
  2. 이석명 역, 노자 도덕경 하상공장구(2005). 소명출판. ISBN 89-5626-180-6
  3. 임채우 역, 왕필의 노자(1998). 예문서원.
  4. 도덕경 체계가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당 현종대인 742년이다.
  5. 전반적으로 다루는 책은 금장태 저, 한국유학의 노자 이해(2006). 서울대학교 출판부. ISBN 89-521-0702-0 이 있다.
  6. 민족문화대백과의 '순언'
  7. 민족문화대백과의 '노자주해'
  8. 노자강의, 기세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