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불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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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불위(呂不韋, 기원전 292년 ~ 기원전 235년)는 중국전국 시대 진나라무관(武官)이며 승상이자 정치가이다.

생애[편집]

정치와 자본의 결탁[편집]

여불위는 조(趙)나라 출신의 거상으로 조나라볼모로 잡혀있던 진나라의 공자 영자초를 엄청난 돈과 상인다운 치밀함으로써 도왔다. 실례로 고우영 화백의 《만화 십팔사략》에 의하면 영자초는 여불위로부터 정치자금을 제공받았으며, 그의 지혜를 빌려 초나라 출신의 화양부인을 초나라 옷을 입고 만남으로써 부인의 양자가 되었다. 그는 후에 진나라의 태후가 되는 자신의 애 조희를 이때 공자 영자초에게 주었다. 당시 조희는 여불위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으며 그 아이가 바로 진시황제이다. 그 후 공자 영자초가 귀국하여 진나라의 왕의 위에 오르자 여불위는 진나라의 승상이 되고 문신후(文信侯)에 봉하여졌다. 진 장양왕이 죽고, 13세의 어린 나이로 영정이 왕의 위에 오르자 상국이 되어 중부(仲父)로 불리며 왕을 도왔다. 후에 여불위는 태후 조씨의 밀통사건에 연루되어 파면 당하고 음독자살하였다.

일자천금[편집]

기원전 239년 여불위는 전국의 식객들을 모아 여씨춘추를 편찬하였다. 그는 완성된 여씨춘추를 진나라의 수도인 함양성 성벽에 진열하며, 이 글에 한자라도 더하거나 깎는다면 천금을 주겠다고 하였다. 이리하며 일자천금이라는 고사가 생겨났다. 여불위에 관한 주요 정보는 사마천사기의 '여불위전'과 유향의 전국 그리고 설원(說苑)이 있다.

일화[편집]

관련 인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