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양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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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양명(王陽明, 성화(成化) 8년(1472년) ~ 가정 7년(1528년))은, 중국 명나라정치인·교육가 사상가이다. 양명학의 창시자, 심학(心學)의 대성자로 꼽힌다. 이름은 수인(守仁)이며 양명은 호. 자(字)는 백안(伯安)이다.

생애[편집]

왕양명

왕수인의 조상은 산동 낭야 사람으로 진(晋)의 광록대부를 지낸 왕람이라는 사람으로, 그의 집안은 처음 남쪽 회계의 산음에 이주해 살다가 23대 손 왕수(王壽) 때에 여요(餘姚-현재의 저장 성에 속함)로 옮겨 대대로 살게 되었다고 한다. 왕수인도 이곳 여요에서 태어났고 10살 이후 이곳을 집안의 고향으로 삼게 되었으며, 양명이라는 호 역시 그의 아버지 왕화(王華)가 집을 증축한 곳인 회계 동남쪽 20여 리 떨어진 양명동이라는 지명을 따서 지은 것이다. 6대조 왕강(王綱)은 광동참의가 되어 묘족의 난에서 죽었고, 고조 왕여준은 예기, 역경을 연구한 학자였다.

어렸을 때 왕수인은 집에서 할아버지에게 가르침을 받았는데, 5살 때까지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성화 17년(1481년) 왕수인은 진사에 1등으로 올랐다. 11살 때 아버지를 따라 북경으로 가던 도중 금산사에서 시부를 지었는데, 그 지혜가 타인을 놀라게 했다. 이후에는 주로 숙사에게서 배웠다. 12살 때 숙사가 "우리가 책을 공부하는 것은 과거에 급제하려는 것이고 이게 으뜸의 일"이라고 하자, 왕수인은 "책을 공부해 성인[聖人]이 되는 일이 되는 것이 으뜸이다"라 답했다고 한다. 13살 때는 어머니가 북경에서 병으로 사망하였다.

17살 때 부인 제씨(諸氏)를 남창(南昌)에서 맞이했는데, 혼례날 집을 나가 우연히 근처 산중에서 도사(道士)와 양생설을 논하다가 집에 돌아가는 것도 잊고, 앉은 채로 밤 새우기도 하고 상식적인 규범을 벗어난 행동을 하여, 다음날 새벽에야 사람들이 찾아내 집으로 데려왔다고 한다. 이듬해 봄에 부인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도중에 강서 광신에서 주자학자 누량을 만나 격물설을 듣기도 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뒤 공부에 정진해, 21세 때는 향시에 합격했으나 회시에는 낙방하였다. 수도 북경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주자가 남긴 책을 구해서 공부했는데,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도 그것 나름의 이치(理)가 있으니 그 이치를 끝까지 캐물어야 한다(格物窮理)"는 주자의 말을 실천하겠다고 관서에 있는 대나무를 7일 동안 바라보았지만 병이 들어서 그만 두었다고 한다. 이것은 그가 주자학을 불신하고, 환멸감을 느끼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28세에 왕수인은 회시에 합격하여 비로소 관리가 되었다. 공부(工部)를 거쳐 이듬해에 형부 운남 청리사주사가 되었다. 30세에는 강북에서 형벌을 받은 죄수를 심의, 기록하는 공을 세우기도 했다. 그 사이에도 승방을 방문하기도 하고, 도사에게 도를 묻기도 했다. 31세 때 병을 이유로 관직을 그만두고 귀향해, 양명동에 집을 짓고 도가의 도인술을 수련한다. 그러다 부모를 그리워하는 것이 인간 본래의 마음인데 도교나 불교는 그 자연스런 정감을 무리하게 끊고 정신을 갖고 노는 데 있다는 데에 생각이 이르게 된다.

도교와 불교의 허망함을 깨닫고 정신이 안정된 양명은 다음해에 항주의 서호에서 요양하였고, 33세에 북경에 돌아왔다. 이듬해에는 동지를 모아놓고 성학(聖學)을 강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35세 때에 귀주(貴州) 용장(龍場)에 유배되었다. 새로 즉위한 무종에게 당시 간관 대선, 박언휘 두 사람이 표를 올려서 환관 유근(劉瑾)을 비난했는데, 왕수인은 그 두 사람을 지지했고, 천자의 뜻에 거역했다는 명목으로 두 사람은 감옥에 갇히자 탄원서를 썼다. 이 죄로 장형 40대를 받고 귀주 용장의 역승에 임명된 것이다. 왕수인은 이를 피해 바다로 도망쳤다가 복건까지 표류하기도 했다.

유근이 죽은 뒤 왕수인은 강서(江西) 여릉(廬陵)의 지현(知縣, 현지사)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10여 년간의 시기는 왕수인의 일생에 가장 활약했던 시절이다. 45세부터 3년 동안 강서, 복건의 각지에서 설치던 무장 도적떼를 토벌하고, 영왕(寧王) 신호(宸濠)의 난을 평정하는데도 공을 세웠다. 무종이 죽고 세종이 즉위하자 왕수인은 신건백(新建伯)에 봉해지고, 남경병부상서(南京兵部尙書)를 겸하게 되었다. 이 때 나이 50세였다. 이듬해에 수인의 아버지가 죽어 상을 치르게 되었는데, 3년상을 마친 뒤에도 복직하지 못하고 56세까지 고향에서 아무 임무도 없이 지냈다. 그 사이에 양명은 양지(良知)의 학설을 수립했고 제자들에게 이를 가르쳤다.

왕수인의 나이 56세가 되던 5월에 광서의 도적을 토벌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7월에는 팔색단등협의 이적을 토벌했는데, 그 소굴을 소탕해서 다년간의 우환을 한방에 제거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타지에서 정무를 행하면서 건강이 악화된 그는 광동성 경계에서 광서로 들어가던 도중에 숙사[宿舍]-숙소-에서 타계했다. 가정 7년(1528년) 10월 29일, 그의 57세의 나이였다. 유언은 "이 마음이 환히 밝은데 다시 무엇을 말하겠는가"였다고 한다.

사상[편집]

당시 명은 오이라트, 타타르, 묘족과 같은 주변 이민족의 침입이 잦았고, 안으로는 각지의 도적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또한 간신배같은 환관들이 조정에서 부패 정치를 주도 하던 시기였다. 학문, 사상도 남송 이후 원, 명을 거쳐 관학으로서의 지배적 지위를 차지했던 주자학의 교조화로, 명 초기에 편찬된 사서대전, 오경대전 안에서 과거 시험 문제가 출제됨으로써 학문과 사상은 고정되었다. 대다수 학자들은 훈고와 문장, 시가에 빠져 들어 허망한 지식을 갖고 놀며 겉으로만 꾸미려는 일에 노력했다. 이들은 주자학의 근본이 되는 자기 수양도 게을리하였다.

양명학에서 주도 동기가 되는 것은 인간의 자연적 심정에 대한 신뢰의 정조이다. 인간의 '마음'을 파악하는 방법에서 주자의 성즉리(性卽理)가 인간의 마음을 성(性, 이理)과 정(情, 현실의 마음의 작용)으로 나누고 정은 성을 현혹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서 성을 실현하기 위해 정을 규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에 비해, 왕수인은 인간은 이미 정 안에 '양지(良知)'가 갖추어져 있으며 자연의 심정으로 행동하면 성을 실현할 수 있다는 심즉리(心卽理)를 주장했다. 여기서 양지는 《맹자》의 "깊은 궁리를 하지 않고서도 알 수 있는 것이 양지이다. 2, 3세의 어린이도 부모를 사랑한다는 것을 모르는 아이는 없다"라는 글에서 나온 것으로, 왕양명은 그것을 하늘(天)이자 하늘의 이치(天理)인 동시에 인간의 마음의 본체로서 시비선악의 판단을 갖추고 있는 선천적으로 구비된 사려(思慮) 이전의 자연스러운 것 즉 '양심'에 가까운 것으로서 받아들이고 있다. 이는 주자의 실천론에 비하면 자유로운 해방감이 수반되는 것이었다.

왕양명의 저작은 훗날 《왕문성공전서(王文成公全書)》로 모아졌다. 양명학의 학설을 담은 《전습록》(傳習錄)·《주자만년정론》(朱子晩年定論)·《대학고본》(大學古本)은 그의 사상을 알기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저서이다.

영향[편집]

양명학은 사후 여러 방향으로 전개되어 실천하는 주체를 소홀히 하는 관념적·공상적인 이론으로 흘렀는가 하면, 착실한 면학수양(勉學修養)을 경시하는 풍조까지 빚어냈지만, 명대의 사조는 양명사상(陽明思想)의 전개(우파/右派와 좌파/左派로 나뉜다)에서 개성이 발휘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왕양명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 인물은 이탁오가 있다. 이탁오의 유명한 저작물은 《분서》와 그 속편 격인 《속 분서》가 있다.

한국에서도 조선(朝鮮) 중기 이후의 사조에 큰 영향을 주었다.

같이 보기[편집]

참고 문헌[편집]

  • 전습록 [1] [청계출판 / 한정길 정인재 공역]
  • 전습록 [2] [청계출판 / 한정길 정인재 공역]
  • 유언록(양명선생유언록) - [소나무출판 / 정지욱 옮김]
  • 일본 양명학 [요시다 코헤이 지음]
  • 주자와 양명학 [마노센류 지음]
  • 왕양명실기[박은식 지음 이종란 역 / 한길사]
  • 한글 주해 왕양명선생실기[박은식 지음 / 최재목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