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향 (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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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향

유향(劉向, 기원전 77년~기원전 6년(원봉元鳳 4년~건평建平 원년))은 중국 전한의 학자, 정치가이다. 처음 이름은 갱생(更生), 자는 자정(子政). 《전국책》(戰國策)을 비롯한 많은 책의 저작자로 알려져 있다. 유방의 막내 동생인 초원왕 유교(劉交)의 현손. 양성후 유덕(陽城侯劉徳)의 둘째 아들, 형으로 유안민(劉安民)이 있다. 동생의 이름은 불명(유경기(劉慶忌)의 아버지). 전한 종실의 신분이었다.

생애[편집]

관례를 한 뒤 선제(宣帝)에게 종사하다가 문장에 재능을 보여 발탁되었다. 아버지 유덕이 회남(淮南)에서 가져온 서책을 보고 연금술에 도전했으나 실패하여 탄핵받고 투옥되었지만, 형 양성후 유안민이 펼치지 못한 유향의 재능을 아까워 해 다시 출사했다. 그 후, 소망지(蕭望之), 주감(周堪)을 비롯한 사람들과 힘을 모아 직무에 힘써, 외척인 허씨와 환관 홍공(弘恭) 등의 폐해를 밝히는 상소를 했는데, 무고로 여겨져 소망지는 자살, 주감 등은 좌천, 유향은 투옥된 뒤 면직되었다. 맏형인 유안민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자 양성후를 이었다.

십수년 뒤, 성제(成帝)의 치세가 되어 홍공 등이 실각하자 다시 임용 되었다. 이때, 이름을 향(向)으로 고쳤다. 그리고 궁중 장서의 감수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 당시 외척인 왕씨(왕광)가 권력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열녀전(列女傳)〉 등의 저작을 시작으로 하여, 문장을 황제에게 진상하여 몇 번이나 황제에게 간언했다. 황제도 간언이 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주변의 압력 때문에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유향은 30여 년이나 중용되는 일 없이 72세에 세상을 떠났다. 홍후(紅侯) 유흠(劉歆)이 유향의 삼남이다.

저작[편집]

  • 신서》(新序)
  • 설원》(說苑)
  • 《열녀전》(列女傳)
  • 전국책》(戰國策)
  • 《별록》(別錄) - 궁중 도서의 해제, 유흠은 이것을 기초로 하여 〈칠략〉이라는 도서목록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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