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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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평(陳平, ? ~ 기원전 178년)은 한나라의 정치가이다.

생애 [편집]

위나라의 신하였으나 위왕이 장한에게 죽자 항우에게 귀순하여 항우의 책사가 되었다. 그 후 전한 고조 유방(劉邦)이 삼진(三秦)을 공격할때, 위무기의 설득으로 유방에게 귀의, 호군중위의 직책을 맡게된다. 반간계를 써 항우의 참모였던 범증을 내친다. 상국 조참서거후, 좌승상(左丞相)이 되었다. 유방의 아내인 여태후유방서거후 여씨친족과 모반을 꾀하자, 우승상(右丞相) 왕릉과 장군 주발(周勃)과 함께 여씨의 난을 평정한 뒤 문제 유항(劉恒)을 옹립하였다.유방의 참모로 큰공을 세운 것을 인정 받아서 '호유후'에 임명되었다. 그 후 '곡역후'로 승진하였고, 조참(曺參)이 죽은 후에는 '좌승상'이 되었고,여후가 죽자 주발(周勃)과 함께 여씨를 숙청한 후 유방의 차남 유항(劉恒)을 문제(文帝)로 옹립 하였다.《사기》에 진평에 대한 전기인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가 전해지고 있다.

반간계 [편집]

진평은 자신이 모시는 주군인 유방이 자꾸 항우에게 패배하자 그 원인이 항우에게는 범증이라는 뛰어난 참모가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항우와 범증을 이간질 시키기위해 항우의 사신이 유방에게 찾아온다는 소식을 듣자 일부러 진수성찬을 차려놓은 뒤 항우의 사신이 도착하자 "아니, 범증님의 사신인 줄 알았더니 새파랗게 어린 항우의 사신이잖아. 여봐라. 진수성찬을 당장 치워버리고 사신은 그냥 대충 대접해라."라고 말하며 진수성찬을 치우도록 하고 항우의 사신에게 매우 초라한, 가난한 집에서 먹는 밥을 식사로 대접했다. 항우의 사신은 항우에게 돌아가는 대로 이 사실을 항우에게 알렸고 항우는 범증을 크게 의심하여 결국 범증을 내쫓았다. 항우에게 쫓겨난 범증은 지병이 악화되어 숨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