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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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량

장량(張良, ? ~ 기원전 189년)은 중국 한나라의 정치가이자, 건국 공신이다. 자는 자방(子房).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소하(蕭何), 한신(韓信)과 함께 한나라 건국의 3걸로 불린다. 유방(劉邦)으로부터 "군막에서 계책을 세워 천리 밖에서 벌어진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이 장자방이다"라는 극찬을 받았다.

생애[편집]

장량의 할아버지인 장개지(張開地)는 전국시대 한나라(韓)의 소후(昭侯), 선혜왕(宣惠王), 양왕(襄王)등 3대를 걸쳐서 재상을 역임하였고, 아버지 장평(張平)은 희왕(釐王), 환혜왕의 치세 때 재상을 역임하였다. 사기색은(史記索隱)에는 장량의 조상은 한나라의 왕족이며, 주나라 왕실과 같은 희성(姬姓)이었지만, 박랑사 사건으로 장씨(張氏)로 성을 바꿨다고 하였다.

한나라 재상 희평(장평)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한나라가 진나라에 멸망하자, 집안이 몰락하였고, 한나라를 멸망시킨것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진 시황제박랑사에서 죽이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하비에서 숨어서 황석공으로부터 태공병법을 배웠다. 그 후 유방이 군사를 일으키자 1백여 명의 종을 데리고 따랐다가, 항량(項梁)에게 옛 한나라 공자 횡양군 성을 한왕(韓王)에 옹립하도록 했고 한나라 사도에 임명되었다. 이후 한성이 항우(項羽)에게 죽자 다시 유방에게 귀순하고 이때부터 유방의 중요 참모가 되어 홍문연에서 유방을 구하고 한신을 천거하는 등, 그는 전략적인 지혜를 잘 써서 유방이 한나라를 세우고 천하를 통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한나라 건국 후에는 정치에 일체 관여하지 않았으며 단지 후계자 문제로 여후에게 자문을 해줬다고 한다. 그 후에 유후(留侯)에 봉해졌다.

그의 후손[편집]

그의 사후, 아들 장불의가 유후(留侯)의 지위를 계승하였다. 장불의는 기원전 175년에 불경죄로 제후를 면직되어 영지를 몰수당했다. 그 후, 한서 고혜고후문공신표에 의하면, 장량의 현손의 아들인 장천추가, 선제시대에 부역 면제의 특권을 받았다. 또 후한서 문원전에 의하면 장량의 후예에 문인 장초가 나왔다. 그 외에, 익주 출신 인물로는 후한의 사도 장호가 장량의 자손을 칭하고 있으며, 장호의 후손에는 아들인 광릉태수 장강, 그의 증손인 촉나라거기장군 장익(張翼) 등이 있다.(『후한서』장호전,『삼국지』장익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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