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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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리말(鍾離眜, ? ~ 기원전 201년)[1] 말 ~ 전한 초의 무장이다.

생애[편집]

이로(伊盧)에 살았다. (楚)의 항량(項梁)·항우(項羽)의 거병의 참여하여, 진 멸망 후 초한전쟁에서 항우의 부장으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유방(劉邦) 휘하의 진평(陳平)의 계락으로 항우와 멀어졌다.

항우가 죽은 후, 종리말은 옛 친구인 한신(韓信)에게 몸을 의탁하였다. 제위에 오른 유방은 한신을 초왕(楚王)에 봉하였으나, 종리말이 초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를 붙잡을 것을 명하였다.

또한, 어떤 자가 유방에게 한신이 반역을 일으킬 것이라고 참언하였다. 유방은 진평의 계략을 받아들여 남쪽에서 사냥한다고 하고 제후들을 불러모은 후, 한신을 습격하려고 하였다. 한신은 유방을 뵈어 자신이 다른 마음을 품지 않았음을 설명하려 하였으나, 체포를 두려워하여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그때 어떤 사람이 한신에게 종리말을 죽이면 용서받을 것이라고 설득하였고, 한신은 이 말을 옳게 여겼다. 이 사실을 안 종리말은 한신에게 말하였다.

한나라가 초나라를 치지 않는 것은, 제가 공께 몸을 맡겼기 때문입니다. 저를 사로잡아 한나라에 아양을 떨고 싶으시다면 오늘 당장에라도 죽어드리겠습니다만, 공 또한 망하고 말 것입니다. 공을 어찌 장자(長者)[2]라 하겠습니까!

그러고는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한신은 종리말의 수급을 들고 유방을 만났으나, 체포된 후 회음후(淮陰侯)로 격하되었다.

자손[편집]

종리말에게는 장남 종리발(鍾離發)과 차남 종리접(鍾離接)이 있었다. 종리발은 구강(九江)에서 가문을 이었고, 종리접은 영천군(潁川郡) 장사현(長社縣)에 살면서 성씨를 종(鍾)으로 고쳤다.[3]

주석[편집]

  1. 흔히 종리매라고 하나, 안사고(顔師古)의 《한서(漢書)》 음주에 따르면 종리말이 옳다.
  2. 어진 사람.
  3. 신당서(新唐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