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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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참(曹參, ? - 기원전 190년)은 전한의 명장이자 개국 공신이다. 패군 출신으로, 자는 경백(敬伯). 원래 진나라의 옥리였으나, 고조 유방의 거병 시에 뜻을 같이하였다. 한신과 더불어 군사면에서 활약을 하였다. 진나라와 항우를 공략하여 한나라의 통일대업에 이바지한 공으로 건국 후에는 공신서열 2번째, 평양후(平陽侯)로 책봉되고 식읍 10600호를 하사받았다. 구강왕 경포의 반란을 평정하기도 하였다. 고조가 죽은 뒤에는 소하의 추천으로 상국이 되었다.

[편집] 그의 후예

조참이 죽은 후, 조줄이 이었으나 여태후 사후에 계급을 내려서 평양후가 되었다. 조줄의 아들, 조기는 오초칠국의 난난포와 같이 교서, 치천, 교동군을 격파하였다. 조기의 아들, 조시가 평양후를 계승하여 무제의 딸이었던 평양공주를 얻었으나, 전염병에 감염되어 인연이 떨어진 평양공주는 위청에 재가한다. 조시의 아들, 조양은 평양후를 계승 무제의 누이 위장공주를 취하였다. 조양의 아들, 조송이 평양후를 계승하였으나 무제 태자의 반란에 강충(무고의 옥)에 연좌되어 작위를 바치게 되었다. 선제의 대가 되어, 조참의 공적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조시의 손자 조희를 보고 다시 평양후를 계승시켰다.

후한말에 등장하였던 조조가 있어, 그의 실제 가문은 조참을 선조로 하고 있다. 그런데, 조조의 조부・조등환관이었는데, 조등은 가문의 존속을 위해 조참의 동료였던 하후영의 자손 조숭을 양자로 입양하여, 조의 성을 계승시켰다. 그리하여 그의 아들이 조조이기 때문에, 조조는 혈통적으로는 조참의 자손이 아니고, 하후영의 자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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