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환관(宦官)은 거세된 남자들로 이루어진 중국한국의 관직이다. 이들은 자신의 성기와 고환을 함에 담아 몸에 지니고 다녔다. 엄밀히 말해 관직이 아닌 궁중노비였으나(신분상으로만 궁중 소속일 뿐 환관의 업무는 궐밖의 노비들과 완벽하게 똑같았다.), 나중에 거세된 남자들이 주로 맡게 된 내시직을 환관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후한 말기에는 십상시라 불리는 10명의 환관이 국가의 권력을 잡기도 했는데, 이는 당시 황후인 하황후와 외척의 비호를 받은 사례라고 볼 수가 있다. 당나라 시기에는 환관 고력사현종양귀비의 총애를 믿고 전횡을 휘둘렀다. 그러나 후한 말기에 모든 환관들이 다 나쁜 인물들이 아니었던 것이 삼국지의 영웅 조조의 양할아버지인 조등(曹騰)역시 환관이었는데 영제 시절 크게 공을 세워 양아들을 들이는 상을 받기도 했다. 그때 조등이 양아들로 받은 인물이 조숭으로서 조조의 친아버지가 된다.

명나라 천계제 시기의 대내총관태감 위충현 역시 뇌물을 받고 정사를 자기 뜻에 따라 임의적으로 처리하였다.

한국조선시대에는 연산군김자원이 내관(환관)으로서 권력을 휘둘렀었다. 그러나 채륜이나 김처선처럼 의로운 환관들도 있었다.

목차

[편집] 국부 제거

환관은 궁중에 소속된 군대인 금위군이나 궁궐을 출입하는 대소 문무백관들과는 달리 궁궐안에서 하루 중 24시간 내내 생활했다. 그런데 환관은 궁녀와의 연애행위가 원천적으로 금지되어 있었으므로 환관이 되게 하기 위해서 연애행위의 근본이 되는 신체기관을 절단하도록 규정을 만들었다. 궁녀는 오직 황제와의 연애행위만 허용되었는데 이는 궁녀가 낳은 아이들은 모두 황제의 서통 자식으로서 황실 계승권이 부여되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근본을 알 수 없는 아이로 인하여 황실의 기반이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이러한 규정을 만들어 적용하였다.

환관이 되기 위해서는 국부를 제거해야 하는데 당시의 의술은 현재와 같이 고도로 발달한 것이 아니어서 국부를 제거할 때 그 뿌리까지 모두 제거했다. 이 때문에 환관 작업을 하는 곳에서는 환관지망생들에게 여러 차례 환관이 될 것에 대해 되물어보는데 환관지망생이 자신없게 대답할 경우 퇴짜를 놓는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국부의 뿌리까지 모두 제거하는 수술(?)을 했기 때문에 이 수술을 시도한 환관지망생은 80~90% 확률로 사망했다. 그래서 환관이 된 사람은 국부제거수술 전의 체력이 보통사람에 비해 월등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절단한 국부는 그냥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조그만 항아리에 담게 된다. 이 항아리는 내시감이 직접 관리하며 항아리 뚜껑에는 해당 항아리 속에 들어가있는 국부의 주인의 이름이 써있다. 이는 '신체가 온전하지 못한 사람으로 죽으면 구천을 떠돌게 된다.'는 미신에 의한 것으로 내시가 죽으면 국부를 다시 바늘로 꿰맨 뒤에 장사를 지내준다.

이 때문에 내시가 갖는 부작용으로서는 요도가 절단되었기 때문에 극심한 요실금을 갖게 되고 또한 몸의 균형을 잃어 종종걸음을 걷게 되었다.

[편집] 궁형(宮刑)

환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춘추전국시대에는 참수형보다 더 혹독한 형벌로 궁형을 일컬었다. 궁형은 환관을 만드는 작업과 다름없이 국부를 제거했는데 같은 죄를 짓고도 깨끗하게 죽음을 택한 사람은 영웅이 되었지만 궁형을 택해서라도 살아남기를 원했던 사람은 궁형을 받음과 동시에 그 사람은 운신의 폭이 좁아지다 못해 아예 없어졌다. 이 형벌은 환관이 되는 과정과 매후 흡사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궁형이라 불렀다.

[편집] 해프닝

중국 춘추전국시대 은나라 주왕의 치세기간 중 어떤 젊은 남자가 수염을 말끔하게 밀고 내시로 변장하여 궁궐 안으로 잠입하여 궁녀들과 정을 통했다. 이 사실이 주왕에게 발각되자 주왕은 이 사내를 3일간 포박시켜서 수염을 기르게 한 후 조리돌림을 했다. 주왕은 이 가짜환관을 조리돌림이 끝나자마자 바로 참수했다.

[편집] 함께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