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제
| 명나라의 제8대 황제 | |
| 재위 | 1464년 ~ 1487년 |
|---|---|
| 황후 | 효정순황후 효목순황후 효혜순황후 |
| 부황 | 정통제 |
| 모후 | 효숙예황후 |
| 이전 황제 | 천순제 |
| 다음 황제 | 홍치제 |
성화제(成化帝, 1447년 12월 9일 ~ 1487년 9월 9일)는 중국 명나라의 제8대 황제(재위 1464년 ~ 1487년)이다. 이름은 주견심(朱見深)이다. 초명은 견준(見濬). 묘호는 헌종(憲宗). 영종(英宗) 주기진의 아들이다.
[편집] 생애
부황 영종이 와랄(瓦剌)에게 포로로 잡힌 뒤 황태후의 명령으로 황태자가 되었다. 1452년 숙부 경태제(景帝)가 폐위되어 기왕(沂王)이 되었다. 1457년 다시 황태자가 되고, 이름을 고쳤다. 1464년 영종이 죽은 뒤 황위를 이었다. 다음 해 성화(成化)로 연호를 바꾸었다. 재위 중에 우겸(于謙)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경태제의 제호(帝號)를 회복했다.
그러나 실정을 많이 저질렀다. 처음으로 황장(皇莊)을 두었다. 권호(權豪)들이 한전(閑田)을 요구하자 전지(田地)를 빼앗아 장전(莊田)으로 만드는 것을 허락했다. 자신보다 17살 많은 만귀비(萬貴妃)를 총애했는데, 낳은 아들이 얼마 뒤 죽자 온갖 패악을 다 저질렀다. 내비(內批)에게 관직을 주는 제도를 실시했다. 방술(方術)을 지나치게 믿었고, 방사(方士)와 승도(僧道)는 내비로 고관이 되었다.
그러나 환관 왕직(汪直)을 기용해 서창(西廠)을 설치해 무고한 충량(忠良)들을 죽였다. 왕직이 축출된 뒤에도 또 환관 상명(尙銘)을 불러 동창(東廠)을 맡기면서 매관매직을 거침없이 자행했다. 하투(河套)에 들어와 살던 달단(韃靼) 부락들이 더욱 거세게 공격해 들어왔고, 형양(荊襄)의 유민들과 광서(廣西)의 부족들이 반란을 일으켜 기세가 날로 드세져 갔다. 23년 병으로 죽었다.
[편집] 가족
황후
- 폐후 오씨(廢后 吳氏) - 만귀비와의 알력이 있은 후에 폐위된다.
- 효정순황후 왕씨(孝貞純皇后 王氏)
- 효목순황후 기씨(孝穆純皇后 紀氏) - 제9대 황제 효종(孝宗) 홍치제(洪治帝)의 생모. 만귀비에 의해 독살되었다. 효종에 의해 황후로 추존.
- 효혜순황후 소씨(孝惠純皇后 邵氏) - 추존 황제 예종(睿宗) 주우원(朱祐杬)의 생모이며 제11대 황제 세종(世宗) 가정제(嘉靖帝)의 조모.
후궁
- 공숙귀비 만씨(恭肅貴妃 萬氏) - 만귀비(萬貴妃). 성화제보다 19살 연상이다.
- 현비 백씨(賢妃 柏氏) - 만귀비에 의해 독살당함.
- 덕비 장씨(徳妃 張氏)
- 안비 요씨(安妃 姚氏)
- 경비 왕씨(敬妃 王氏)
- 공비 양씨(恭妃 楊氏)
- 단비 반씨(端妃 潘氏)
- 숙비 소씨(肅妃 蘇氏)
자녀
- 도공태자 주우극(悼恭太子 朱祐極) - 현비 백씨(母). 생모와 같이 만귀비에게 독살당하였다.
- 효종 주우당(孝宗 朱祐樘) - 명나라 제9대 황제(홍치제)
- 예종 주우원(睿宗 朱祐杬) - 흥헌왕(興獻王), 세종(世宗) 가정제(嘉靖帝)의 생부. 가정 원년에 예종으로 추존되었다.
- 기혜왕 주우륜(岐恵王 朱祐棆) - 효혜순황후 소씨(母)
- 익단왕 주우빈(益端王 朱祐檳) - 덕비 장씨(母)
- 형공왕 주우휘(衡恭王 朱祐楎) - 덕비 장씨(母)
- 옹정왕 주우운(雍靖王 朱祐枟) - 효혜순황후 소씨(母)
- 수정왕 주우저(壽定王 朱祐楮) - 안비 요씨(母)
- 여안왕 주우형(汝安王 朱祐梈) - 덕비 장씨(母)
- 경간왕 주우순(涇簡王 朱祐橓) - 공비 양씨(母)
- 영장왕 주우추(榮莊王 朱祐樞) - 단비 반씨(母)
- 신의왕 주우해(申懿王 朱祐楷) - 공비 양씨(母)
[편집] 관련 항목
| 전 임 아버지 영종 천순제 주기진 |
1464년 ~ 1487년 | 후 임 3남 효종 홍치제 주우당 |
| 홍무제 | 건문제 | 영락제 | 홍희제 | 선덕제 | 정통제 | 경태제 | 천순제(복위) | 성화제 | 홍치제 | 정덕제 | 가정제 | 융경제 | 만력제 | 태창제 | 천계제 | 숭정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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