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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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唯物論)은 세계의 근본적 실재는 정신이나 관념이 아니라 의식이 외부에 그것과는 독립하여 존재하는 물질(또는 자연)이라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유물론에서는 모든 정신 현상도 물질의 작용이나 그 산물이라고 이해한다.

유물론은 관념론(觀念論)에 대립하며 여기에도 몇 가지 종류가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기계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이 있다. 두 가지의 가장 큰 차이는 기계적 유물론은 모든 현상을 자연 인과 관계와 역학적 법칙으로 해석 하려는 방식으로 일명 “관념론적 유물론”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역사적 유물론은 다른 내용으로서 일명 “변증법적 유물론”이라고 한다.

정신을 바로 물질이라고 주장하는 입장 또는 물질(뇌)의 상태·속성·기능이라고 주장하는 입장 등 여러 입장이 있다. 원래 철학용어로서는, 세계의 본성(本性)에 관한 존재론(存在論)상의 입장으로서 '유물론'과 '유심론(唯心論)'을 대립시키고, 인식의 성립에 관한 인식론(認識論)상의 학설로서 '실재론(實在論)'과 '관념론(觀念論)'을 대립시키는 것이 올바른 용어법이다.

그러나 실제로 '유물론'은 '관념론'의 대어(對語)로 사용된다. 그 까닭은 근본적으로 근세철학에서 유물론은 실재론적 입장의 세계를 구성하는 '물질적 실체'에 근거를 두고 존재론이라는 형식으로 자기 주장을 해왔던 데 대하여, 관념론은 유심론적 입장이 '사고(思考)하는 우리'에게 근거를 두고 인식론적으로 전개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 '유물론'으로 19~20세기에 걸쳐 커다란 영향력을 끼친 엥겔스가 용어법으로서 '유물론과 관념론'이라는 대어를 사용한다는 사실과 그것을 계승한 레닌이 '오해를 초래하는 것'이라고 하여 '실재론'이라는 용어를 배척하였다는 사정도 있다.


자연과학적 유물론[편집]

1848년 혁명 이후 독일의 대공업과 자연과학이 더욱 발전하면서 자연과학적 유물론이 바야흐로 대두하고 있던 신흥 국민의 계몽철학으로 등장하였다. 헤겔셸링고전철학에 염증을 느껴 왔던 그들 자유 지식인들 사이에 이 유물론이 크게 유행하였다. 자연과학적 유물론의 본질은 의식사고 등 심적 현상을 에너지 불멸의 법칙이라는 자연법칙으로 환원하려고 하는 기계론적 유물론이라는 점에 있다. 그것은 본래의 유물론을 비속화하고 속류화(俗流化)한 것이라 해서 ‘속류유물론’이라고도 한다. 대표적인 자연과학적 유물론자로서는 포크트, 몰레스코트, 뷔히너, 디 보어 레이몬 등이 있다.[1]

유물사관[편집]

유물사관(唯物史觀)은 마르크스·엥겔스가 주장한 유물론적인 역사해석의 체계로, '사적 유물론' 혹은 '유물사관'이라고도 한다.

역사해석에 있어서 물질적 생산력을 그 인과적 요인 중 가장 중요시하는 역사관이며, 세계정신(Welt geist)의 자기 전개과정이 역사라고 주장한 헤겔류의 관념사관과 반대된다. 즉 마르크스·엥겔스에 의하면 역사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은 인간의 의식이나 관념이 아니라 물질적 생산양식이란 것이다. 생산력의 발전단계는 그 시대마다 노동도구의 발달 단계로 표현되기 때문에 유물사관에는 생산기술 발달에 중점을 둔다.

마르크스·엥겔스는 생산관계의 변화에 따라 원시 공산제 사회, 고대 노예제 사회, 중세 봉건제 사회, 근대 자본주의 사회, 다시 사회주의사회, 공산주의사회의 차례로 발전한다고 주장하며, 노예제에서 자본제까지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인정되고 따라서 계급대립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인류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규정했다.

유물사관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을 비롯해서 계급적 모순을 역사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주장하는 변증법적 역사해석을 시도해 왔으나 1958년 이후 공산권의 모순 논쟁에서는 모순이 역사발전의 원동력이 아니요, 모순의 지양이나 통일 단결이 그 원동력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중·소 분쟁이나 체제내의 반목·비판의 여지를 주지 않으려는 방향으로 유물사관을 크게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2]

주석[편집]

  1. 자연과학적 유물론, 《글로벌 세계 대백과》
  2. 유물사관, 《글로벌 세계 대백과》

함께 보기[편집]

참고 문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