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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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푸리에

프랑수아 마리 샤를 푸리에(François Marie Charles Fourier, 1772년 4월 7일 ~ 1837년 10월 10일)는 19세기프랑스공상적 사회주의자이다.

유복한 모직물 상인의 외아들로 프랑스 동부의 브장송에서 출생하였다. 1791년 19세 때 리옹의 어떤 상사(商社)의 외무사원이 되었다. 1793년 부친의 유산으로 리옹에서 상사를 차렸으나 프랑스 혁명의 소동으로 상품을 징발당하여 파산한다. 그 후에도 사용인으로서 상업실무에 관계하거나 중매인이 된다든가 하여 상업 투기의 기만성을 체험한다. 이 체험에서 사적 소유에 기초를 둔 상업의 무정부성이 그의 자본주의 비판의 요점이 되었다. 1808년에 〈4운동의 이론〉을 발표하였고, 또 1822년 간행한 주저 〈농업가족집단〉(개정 증보판 〈보편적 통일의 이론〉1834년), 기타 저서와 논문으로 집단 소유에 입각한 파랑쥬라는 명칭의 공동조합 제도를 구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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