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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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년 8월 27일 ~ 1831년 11월 14일)은 관념철학을 대표하는 독일의 철학자이다.

헤겔의 초상화,Schlesinger, 1831
헤겔의 초상화,Schlesinger, 1831
헤겔, 동판화
헤겔, 동판화

목차

[편집] 생애

다음은 헤겔이 손수 쓴 자신의 이력서의 전문을 번역한 것이다. 이 이력서는 1804년 까지의 헤겔의 약력을 담고 있다. 글의 출처는 E. Moldenhauer와 M. Michel 이 편집한 헤겔 전집 I (1982, 프랑크푸르트), 582f.

나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1770년 8월 27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출생. 나의 부모, 아버지 게오르크 루트비히 헤겔, 운송회계사 고문 그리고 어머니 크리스티네 루이제 프롬은 개인교수뿐만 아니라 고대어 및 현대어 그리고 학문의 기초를 가르치는 슈투트가르트의 공립 김나지움에서 수업을 받게하므로서 나를 학문적으로 교육시키는데 정성을 기울였다. 나는 18세에 튀빙겐의 신학원에 입학하였다. 나는 2년 동안 고전문헌학을 전공으로 하는 슈뉘러(Schnürer), 철학수학을 전공으로 하는 플라트(Flatt), 벡(Beckh) 밑에서 공부를 한 후, 철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잇달아서 3년 동안 르 브레(Le Bret), 울란드(Uhland), 스토르(Storr) 그리고 플라트의 지도하에서 신학과 관련된 학문을 공부한 끝에 슈투트가르트의 신교 총무원에서 실시한 신학과 입학시험에 합격하여 신학과 지원생으로 등록되었다. 나는 부모님의 희망에 따라 설교사직을 선택하였으며 신학이 가진 고전문학 그리고 철학과의 연계성을 고려하여 신학 공부에 충실하였다. 신학과 졸업 후, 나는 신학을 바탕으로 하는 직업들 가운데 실제 설교사직에 별로 구속되지 않는 직업, 이를테면 고전문학과 철학 연구에 필요한 여유를 얻을 수 있으며 또한 외국에서 상이한 조건 밑에 생활하면서도 짬을 낼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였다. 이러한 직업으로서 가정교사직을 나는 베른프랑크푸르트에서 찾았으며, 여기에서 내가 결정한 삶의 과제인 학문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얻었다. 6년간 이 두 도시에서 시간을 보낸 후, 아버지가 사망하자 나는 철학에 마음과 몸을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예나 대학의 명성은 내 장래를 위해 보다 훌륭히 공부할 수 있고 그리고 교수직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엿보는데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곳이었다. 나는 피히테셸링 철학체계의 차이점, 전자의 불충분한 점에 관한 논문을 써 그 곳에 지원하였으며, 얼마 후 나의 박사학위논문, 행성들의 궤도에 관하여 (De orbitis planetarum)의 공개 변론을 통한 심사에서 그 곳 심사위원회로부터 교수 허가를 받았다. 나는 셸링 교수와 함께 "철학비판잡지" (Das kritische Jurnal der Philosophie) 두 권을 간행하였으며, 이 가운데 나의 논문:

3년 전부터 철학과 사강사로 있으면서 나는 여러 강의를 하였으며, 작년 겨울에는 수 많은 학생이 강의를 들은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지난 해 공작 관할의 광물학 협회의 제 2 부의장으로 선출 되었으며 그리고 최근에는 자연 연구 협회에 정회원으로 가입되었다. 수 많은 연구 가운데 철학이 나의 천직으로 굳어졌기에 나는 친애하는 관계 당국으로부터 정교수로 채용되기를 갈망할 따름이다.
헤겔과 학생들
헤겔과 학생들
헤겔의 묘비
헤겔의 묘비

이 이력서를 쓴지 1년 후 1805년 헤겔은 예나 대학의 원외 교수 철학자로 채용된다. 1807년에는 헤겔 관념론의 핵을 이루는 정신현상학이 출판된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사생활 면에서 헤겔은 살고있던 셋방의 주인이 사망한 후 그의 아내 샬로테와 정을 맺어 그녀로부터 아들 루드비히 피셔를 얻지만, 1811년 22살된 처녀인 마리 폰 투허(Marie von Tucher)와 결혼을 한다. 이 사이에 1808년 뉘른베르크 김나지움의 교장직을 받아 들인다. 1812년 논리학이 빛을 보게되며, 1816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교수자리를 옮긴 후 다음 해에 철학적 학문의 백과사전(엔치클로패디)을 출판한다. 1816년 드디어 베를린 대학의 피히테의 후임 교수로서 초빙되어 여기서 사망할 때까지 연구활동을 하면서 명성을 날리게 된다.

[편집] 철학세계

헤겔의 철학은 독일 관념론의 절정으로 평가 받고 있다.[1] 헤겔의 철학 세계에 대해 흔히 거론되는 주제는 변증법, 절대 이성, 역사의 종말과 같은 개념들이다.

[편집] 변증법

헤겔은 정, 반, 합의 개념으로 변증법을 정형화 하였다. 헤겔의 이러한 변증법은 후 일 헤겔 좌파 철학자들을 거쳐 카를 마르크스에게 영향을 주었다. 변증법은 만물이 본질적으로 끊임 없는 변화 과정에 있음을 주창하면서 그 변화의 원인을 내부적인 자기부정, 즉 모순에 있다고 보았다. 원래의 상태를 정이라 하면 모순에 의한 자기부정은 반이다. 만물은 이 모순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운동하며 그 결과 새로운 합의 상태로 변화한다. 이 변화의 결과물은 또다른 변화의 출발점이 되고 이러한 변화는 최고의 지점에 도달할 때 까지 계속된다.

[편집] 절대 이성

헤겔에게 있어 절대 이성은 변증법에 의해 도달되는 최고의 지점, 즉 더 이상 변화될 필요 없는 최고의 위치를 뜻한다.

[편집] 역사의 종말

헤겔은 인간의 역사 역시 변증법적 발전을 겪는다고 파악하였으며 그 결과 최고의 발전단계에 이르러 더 이상의 변화가 필요 없는 상태를 역사의 종말이라 명명하였다. 헤겔은 당대 독일이 역사의 종말 단계에 들어섰다고 주장하였다가 많은 비판에 직면하기도 하였다.

[편집] 영향

[편집] 주석

  1. 테리 핀카드, 전대호 태경섭 역, 《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 이제이북스, ISBN(13) : 9788956440835

[편집] 읽어보기

헤겔 관계 서적은 (1980년 까지) 아래의 책 참고.

  • 쿠르트 슈타인하우어, 헤겔 연구서적 (Kurt Steinhauer, Hegel Bibliographie. Materialien zur Geschichte der internationalen Hegelrezeption und zur Philosophiegeschichte, München 1980).

[편집] 저서

  • 《정신현상학》, (Phänomenologie des Geistes, 1807)
  • 《역사철학강의》,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I-III, 1817)
  • 《법철학》,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1820)
  • 《미학》, (Ästhetik, 1828)
  • 《엔치클로페디》, (Enzyklopädie I-III, 1830)

[편집] 헤겔 소개서

  • 오토 푀겔러 (Otto Pöggeler), 헤겔철학 입문, 1977 뮌헨.
  • 로젠크란츠 (Karl Rosenkranz), 헤겔의 생애, 1969 다름슈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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