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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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대처
Margaret Hilda Thatcher
마거릿 대처
마거릿 대처
영국 영국제52대 총리
임기 1979년 5월 4일~1990년 11월 28일
전임: 제임스 캘러헌(제51대)
후임: 존 메이저(제53대)

국적 영국 영국
출생일 1925년 10월 13일(1925-10-13)
출생지 잉글랜드 잉글랜드 링컨셔 주 그랜섬
사망일 2013년 4월 8일 (87세)
사망지 잉글랜드 잉글랜드 런던
정당 보수당
학력 옥스퍼드 대학교 서머빌 칼리지
종교 성공회 (전 감리교)
배우자 데니스 대처
자녀 카롤 대처
마크 대처
서명 128px

마거릿 힐다 대처 남작(영어: Margaret Hilda Thatcher 마거릿 힐다 새처[*], Baroness Thatcher, LG, OM, 1925년 10월 13일~2013년 4월 8일)은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영국의 총리를 지낸 정치가이다. 영국 최초의 여성 보수당 당수이기도 하다.

보수적이며 강경한 성품으로 철의 여인(Iron Lady)이라는 별명으로 불려서, 전기 영화 《철의 여인》도 만들어졌다.

생애[편집]

대처의 생가

1925년 10월 13일 링컨셔 주 그랜샘에서 식료품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그랜샘에서 보냈는데, 그곳에 아버지가 2개의 식료품점을 운영하고 있었다.[1] 아버지 알프레드 로버츠는 현지의 명사로, 시장을 지낸 경험도 있었다. 대처의 생가는 대대로 감리교의 독실한 신자이며, 생가의 가훈이었던 "검소 검약", “자기책임”, “자조노력”의 정신은 대처에게도 현저하게 계승되었다. 대처는 아버지 알프레드를 매우 존경했고, “인간으로서 필요한 것은 모두 아버지에게서 배웠다”는 말을 자주 입에 담았다.

결혼 전 성은 로버츠(Roberts)이다. 옥스퍼드 대학교 시절에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경제학에도 심취해 있었다. 그때 품은 경제에 대한 생각이 이후의 신자유주의 경제 개혁(소위 대처리즘)의 원류가 되었다. 1947년 옥스퍼드 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했다. 독학으로 법률을 공부해, 29세 때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1959년 보수당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뛰어들었고, 1970년 당시의 에드워드 히스 총리에 의해 교육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1975년 영국에서는 처음으로 보수당 여성당수가 되었으며, 1979년 총선거에서는 노동당의 제임스 캘러헌 전 수상을 누르고 첫 여성 총리가 됐다. 지속적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어 1987년 총선거에 의해 3선에 성공하였으며, 이를 통해 20세기 영국 총리 중 가장 긴 11년 209일의 재임기간을 지냈다.[2]

저서로는 《권력에로의 길》이 있다.[3]

정치[편집]

하원 의원[편집]

1950년, 보수당에서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하지만 낙선했다. 이듬해 1951년에는 10세 연상의 데니스 대처와 결혼하고 법률 공부를 시작한다. 1954년에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또한 이 당시는 여성의 권리 확대를 강하게 호소했다. 1959년에 하원의원에 첫 당선, 1970년에 히스 내각에서 교육과학부 장관을 맡는다. 이때 교육 관련 예산을 삭감할 필요에 직면한 대처는 학교에서 우유 무상급식 폐지를 결정하고 “마거릿 대처, 우유 강탈자”(Margaret Thatcher, Milk Snatcher)로 비난을 받으며, 맹렬한 항의의 폭풍을 일으켰다.[4]

당대표[편집]

야당 대표 시절의 대처

1974년 선거에서 보수당은 패배를 당했고, 이듬해 1975년 2월 보수당 당대표 선거가 실시된다. 원래 대처는 당내 우파의 키스 요셉을 지지했지만, 조셉은 수많은 문제성 발언을 야기해 당 안팎에서 반발을 받자 출마를 포기했다. 따라서 우파에서 대처가 출마한다. 교육과학부 장관의 경험 밖에 없는 대처의 당대표 선거 출마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았지만, 에드워드 히스를 물리치고 보수당 대표로 취임한다. 같은 해 영국을 포함한 전 35개국에서 체결하여 채택된 〈헬싱키 선언〉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반면 소련의 국방부 기관지 〈크라스나야 즈붸즈다〉(빨간별, Красная звезда (газета) : 현재에도 러시아 국방부 기관지로 발행)"는 1976년 1월 24일 문제의 기사 속에서 대처를 ‘철의 여인’이라고 비난했다.[5] 아이러니하게도 이 ‘철의 여인’의 통칭을 대처 자신도 마음에 들어했으며, 모든 미디어에서 다루어졌기 때문에 대처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총리[편집]

레이건과 대처

1979년부터 11년간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로 재임했다. 그녀가 펼친 경제 정책은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두었다. 또한 인플레와 노사분규로 인해 침체된 영국 경제를 회복하기 위한 방안 즉, 대처리즘을 내세웠다. 이 정책은 동시대의 정치 외교적 동지였던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정책인 레이거노믹스와 많은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철저히 반공주의를 추구했다. 그래서 소련에 의해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이 지어졌다. 앨런 무어는 《브이 포 벤데타》에서 대처리즘의 이런 극우적 면모를 통렬히 비꼬았다.

경제적으로는 과감한 시장주의 경제를 도입하여 영국을 영국병으로부터 구하고자 했다. 장기간 이어진 석탄 노동자 파업을 진압하고 주요 국영 기업을 민영화했으며 사회 복지 혜택을 감축했다. 외교적으로는 미국과 우호관계를 심화하면서 유럽 공동체(European Community)의 경제 공동체 이상의 발전에는 반대하였고, 1982년 아르헨티나의 침공으로 발발한 포클랜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녀의 정책은 토니 블레어 총리 시절의 영국의 경제 호황의 밑바탕이 됐다고 인정받고 있으나, 반대측에서는 빈부 및 지역 격차, 영국 제조업의 붕괴를 초래했다고 비판한다. 또한 대처의 경제 개혁 정책은 당시 영국의 경제 문제를 뿌리부터 해소하지 못했다는 비판 역시 받고 있다.

한편, 1982년 아들 마크가 파리-다카르 랠리에서 실종된 뒤 구조됐는데,[6][7] 이로 인해 철의 여인으로 불리던 대처가 눈물을 보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6][7]

아르헨티나포클랜드 제도 탈환에 영국이 맞대응하도록 한 장본인으로 이 맞대응으로 인하여 포클랜드 전쟁이 발발했다. 이 때문에 마거릿 대처가 사망하자 영국이 아르헨티나에 포클랜드 제도를 반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처리즘[편집]

1979년 총선거에서 보수당의 승리로 총리가 된 대처수상은 영국 경제의 재활성화를 위하여 노동당 정부가 고수해 왔던 각종 국유화와 복지정책 등을 포기하고 민간의 자율적인 경제활동을 중시하는 머니터리즘(monetarism)에 입각한 강력한 경제개혁을 추진했는데, 이러한 대처의 정책을 ‘대처리즘’이라고 한다.

개혁의 내용으로는 ①복지를 위한 공공지출의 삭감과 세금인하 ②국영기업의 민영화 ③노동조합의 활동규제 ④철저한 통화정책에 입각한 인플레이션 억제 ⑤기업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 보장 ⑥외환관리의 전폐와 빅뱅(big bang) 등을 통한 금융시장의 활성화 등이 있다. 그 외에도 대처는 작은 정부의 실현, 산학협동(産學協同) 중심의 교육정책, 유럽통합 반대 등의 정책을 추진하였다.

대처는 사회, 경제적인 개혁정책 뿐만 아니라 당시 영국사회의 침체된 상황을 '영국병' 이라고 진단하여,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전 사회적인 의식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대처의 개혁은 인플레이션을 극복하고 경기를 회복하는데 성과를 보이기는 했지만, 예전보다 심각해진 실업문제가 대두되자 국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대처리즘을 비판하는 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최후[편집]

대처의 장례식

대처는 2002년 경미한 뇌졸중을 겪은 이후 2012년 방광에 생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고, 2013년 4월 8일 사망했다.[8]

마거릿 대처가 사망하자 영국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는데 마거릿 대처의 죽음을 '쌤통'[9]이라며 자축하고 마거릿 대처가 영국의 수상임에도 불구하고 대처의 민영화 남발에 불만을 크게 품은 일부 사람들은 "마거릿 대처의 장례식도 민영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10] 이와 반대로 영국의 호황을 이끌어낸, 영국을 대표하는 수상으로 평가하며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 또한 있었다.

서훈[편집]

주석[편집]

  1. Beckett (2006), p. 3
  2. Margaret Thatcher
  3.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
  4. Smith, Rebecca, "How Margaret Thatcher became known as 'Milk Snatcher'", 8 August 2010 작성. 9 April 2013 확인.
  5. http://www.margaretthatcher.org/speeches/displaydocument.asp?docid=102939
  6. 자식문제로 가슴앓이하는 유력인사들 한국일보 2000년 07월 07일자
  7. 유력인사들 '무자식이 상팔자?' 한국일보
  8.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1982541
  9. 'Ding Dong' - Margaret Thatcher's foes celebrate death of former PM
  10. Thatcher state funeral to be privatised

바깥 고리[편집]

전 임
제임스 캘러헌
제52대 영국 총리
1979년 5월 4일~1990년 11월 27일
후 임
존 메이저
전 임
로널드 레이건
G8 의장
1984년
후 임
헬무트 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