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마르 알 카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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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마르 알 카다피

무아마르 알 카다피(아랍어: معمر القذافـي Mu‘ammar al-Qaḏḏāfī[*], 1942년 6월 7일 ~ )은 리비아의 군인 출신 정치인이다.

유목민의 아들로 사막의 천막에서 태어나 수르트에서 성장하였다. 1963년 벵가지리비아 대학교를 졸업한 후, 군사학교에 들어갔다. 군인이 된 후, 잠시 영국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꾸준히 진급하며 경력을 쌓던 그는 이집트나세르를 모방하여 젊은 장교들로 구성된 자유장교단을 구성했다. 육군 대위 카다피는 1969년 9월 국왕 이드리스 1세의 해외 순방 중 쿠데타를 일으켰고, 혁명평의회 의장으로 취임하여 정권을 장악하고 군 사령관을 맡았다.

그 후 미국 군사기지를 철수시키고, 이탈리아인을 추방했다. 외국의 석유회사들을 추방하고, 석유를 국유화했다. 1970년부터 총리·국방장관을 겸하다가 1972년 이들 자리를 내놓고 완전한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는 문화대혁명을 주도했다.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의해 음주를 금지시키고, 독자적인 직접민주제를 구상하였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녹색서》(1975)라는 책에 밝혀져 있다.

한편 중동지역에 단일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려는 시도를 했다. 이에 따라 이집트와 아랍 연합 구성에 합의했으나, 중동 전쟁 이후 이집트의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이 추진한 평화 정책에 반발하여 양국 관계는 악화되었다. 1980년 시리아와의 합방을 선언했으나, 곧이어 이란-이라크 전쟁이 일어나 합방은 무산되었다.

그는 비동맹 운동에 참가하고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나, 오랫동안 독재 정치, 인권 탄압, 테러, 핵실험 등의 의혹으로 인해 국제적으로 많은 비난을 받았다. 서방 세계의 경제 제재에도 국유화한 석유로 막대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를 국제 테러 단체에 지원한 의혹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괴팍스럽고 예측할 수 없는 행동으로 자주 가십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서방 세계에 화해의 손짓을 내보이고 있다. 2004년 미국과 외교관계를 복원시켰으며, 미국은 2006년 리비아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였다. 2008년 9월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트리폴리를 방문하여 카다피와 회담하였다.[1] 또한 과거 이탈리아인의 재산을 몰수하고 추방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이탈리아의 식민 지배 사과를 받아들였다.[2]

2008년 9월 혁명평의회 의장 취임 49년주년을 맞이한 그는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집권하고 있는 정부 수반이다.

[편집]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