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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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카터 노벨상을 수상한 인물입니다.
James Earl Carter, Jr.
지미 카터
미국의 국기 미국제39대 대통령
임기 1977년 1월 20일~1981년 1월 20일
부통령 월터 F. 먼데일
전임: 제럴드 포드(38대)
후임: 로널드 레이건(40대)

출생일 1924년 10월 1일
출생지 조지아 주
정당 민주당
종교 침례교
배우자 로잘린 스미스 카터
서명

지미 카터(Jimmy Carter, 본명 James Earl Carter, Junior., 1924년 10월 1일 ~ )는 민주당 출신 미국 제 39 대 대통령(1977년 ~ 1981년)이다.

조지아 주 섬터 카운티, 플레인스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조지아 공과대학교를 졸업하고 1946년 메릴랜드 주에 있는 아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 (United States Naval Academy)를 졸업하였다. 그 후 해군에 들어가 전함·원자력·잠수함의 승무원으로 일하였다. 1953년 제대하고 땅콩·면화 등을 가꿔 많은 돈을 벌었다. 1962년 조지아 주 상원 의원에 당선되고, 1970년 조지아 주 지사에 뽑혔다. 1976년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인권 존중을 기본 정책으로 내세워, 포드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미군 철수 문제로 한때 한미 관계가 불편하기도 하였다.

대통령이 되기 전 조지아 주 상원의원을 두 번 연임하였으며, 1971년부터 1975년까지 조지아 주 주지사로 근무하였다.[1]

또한 북한의 위협에 대비해 1978년 한미연합사를 창설했다. 1977년 취임한 카터 대통령은 1978년1982년 3단계에 걸쳐 주한미군과 핵무기를 완전 철수키로 하고 대신 한미연합사를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주한미군사령부와 정보기관·의회의 반대에 부딪혀 주한미군은 완전철수 대신 6,000명을 감축하는 데 그쳤다. [2]

취임 이후 카터는 계속해서 도덕정치를 내세웠으나 계속되는 미국 내 경제불황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지못하여 1979년,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로널드 레이건 후보에게 압도적인 표차로 뒤져 결국 재선에 실패하였다.

1차 북핵위기 당시 북한을 방문하여 미국과 북한의 중재에 큰 기여를 했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이 임박한 시기였다.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이란 사태에 발목이 잡혀 실패한 대통령으로 평가를 받지만, 사실상 이란 사태는 카터가 해결한 것이었고, 사랑의 집짓기 운동 등으로 퇴임 후에 더 존경받는 특이한 인물로 남았다.

인권과 중재역에 대한 공로로, 2002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편집] 참고 문헌

  1. 조지아 주 백과사전. Jimmy Carter. Georgia Humanities Council.
  2. JOINS | 아시아 첫 인터넷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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