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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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76년 11월 2일에 치른 미국의 대통령선거이다. 현직 공화당 제럴드 R. 포드 대통령이 비교적 무명이었던, 전 조지아 주지사 민주당지미 카터 후보에게 패배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1974년에 사임을 했으며, 사임 전에 미국 수정 헌법 제25조에 따라서 포드를 부통령으로 임명했다. 그리하여 포드는 공직에 선출되지 않았던 유일한 대통령이 되었다. 빈약한 경제와 닉슨의 사면에 대한 무거운 정치적 댓가를 치루며, 포드는 전당대회 때까지 공화당의 지명을 받지 못했다. 다른 민주당 유력 주자보다 무명이었던 카터는 워싱턴 아웃사이더와 개혁가로서 입후보를 했다. 그리하여 카터는 간신히 선거에서 이겼으며, 1848년 재커리 테일러 이후 딥 사우스에서 선출된 최초의 대통령이 되었다.

지명전[편집]

민주당[편집]

민주당 후보는 다음과 같다.

197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대패한 민주당은 워터게이트 사건의 정치 불신을 정권 탈환의 호기로 파악하고, 유력 정치인들이 줄줄이 이름을 알린 대란이 되었다. 특히 지명도 측면에서 브라운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잭슨 상원 의원, 유댈 하원의원이 유력했었지만, 정치 불신은 공화당뿐만 아니라 민주당을 포함한 기성 정치에 대한 비판에까지 미치고 있었다. 그런 중에 전국적으로 지명도가 낮았던 지미 카터 조지아 주지사가 경선 개혁을 능숙하게 이용하는 형태로 두각을 나타내면서, 출신 주 조지아와 앨라배마와 인디애나 예비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잭슨 후보가 조속히 사퇴를 했고, 유댈은 선거전을 계속했지만 카터 기세를 꺽을 정도는 되지 못했다. 민주당 전당 대회에서는 첫 번째 투표로 카터 후보 지명을 결정했다. 카터가 부통령 후보로 선택한 것은 미네소타 출신 월터 먼데일이었지만, 이것은 동일 지역 허버트 H. 험프리 전 부통령의 지원을 기대했던 것이었다.

공화당[편집]

공화당 후보는 다음과 같았다.

포드는 워터게이트 사건에 관계되어 있었으며, 사임한 전직 닉슨 대통령을 사면해 준 것으로 사건의 주동자와 동급으로 취급되었다. 게다가 포드 자신이 스피로 애그뉴 부통령의 사임에 따라 1973년 닉슨에 임명된 것으로부터, 대선 심판을 한번도 ​​거치지 않고 대통령에 취임했다는 빚도 겹쳤다. 또한 포드는 닉슨에서 데탕트 정책을 점령했지만, 이것도 보수파의 반발을 불렀고, 1975년 말경에 레이건이 대통령에 이름을 알리게 되어다.

포드는 중도파의 지지를 챙기면서 레이건에 대항했지만, 뉴햄프셔의 예비 선거에서는 근소한 차이로까지 몰렸다. 이후에도 일부 주를 제외하고 레이건의 선전을 허용했다. 결국 포드가 달아나는데 성공했지만, 보수파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던 부통령 넬슨 록펠러를 용퇴시키고, 캔자스 상원 의원 로버트 돌을 부통령 후보로 선택하여 본 선거에 임했다.

2개의 선거[편집]

선거전의 정세는 포드에게 유리했지만, 카터는 정직한 아웃사이더 개혁자로 선거전을 공략했다. 포드는 토론에서 동유럽이 공산주의에 의해 점령되지 않았다고 거듭 주장하며, 큰 실수를 남발했다. 워싱턴 주 공화당 후보에 대한 유권자의 한 사람은 로널드 레이건에 투표했다.

결과[편집]

대통령후보 선거인단투표 일반투표 득표율 정당 부대통령후보
(선거인투표)
지미 카터, 조지아주당선 297 40,825,839 50.1% 민주당 월터 먼데일, 미네소타주 (297)
제럴드 R. 포드, 미시건주 240 39,147,770 48.0% 공화당 밥 돌, 캔자스주 (241)
로널드 레이건, 캘리포니아주 1 불출마 - 공화당 (1)
유진 J. 매카시, 미네소타주 0 756,691 0.9% (독립)
로저 맥브라이드, 조지아주 0 173,011 0.2% 미국독립당 데이비드 바 그랜드
레스터 매덕스, 조지아주 0 170,531 0.2% 미국독립당
토마스 J. 앤더슨 0 160,773 0.2% 아메리칸 당
기타 0 321,274 0.4%
합계 538 81,555,889 100.0%
출전: U.S. Office of the Federal Register